[박해현의 문학산책] 2012년 권력은 웃음에서 나온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명쾌하게 말하는 사람은 개그맨 최효종이다. TV에서 '애매한 것을 정해주는 남자'(애정남)로 불린다. "애인과 여자 친구의 차이는?" 하고 물으면 "그녀가 물에 빠졌을 때 남자가 구하러 물에 뛰어들면 애인이고, 긴 막대기 같은 것으로 꺼내주면 여자 친구"라고 답하는 식이다. "공공장소에서 스킨십은 어디까지?"라고 물으면 "남녀가 팔짱을 끼는 건 괜찮지만,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안 돼요"라고 야단친다. 사회 구성원이 합의하는 규칙이 애매해진 세태를 풍자하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을 속 시원하게 풀어줄 진짜 '애정남'을 바라는 민심이 뜨겁게 호응한다는 분석도 있다.

최효종은 '사마귀 유치원'이란 코너에선 반어(反語)와 역설(逆說)의 개그를 펼친다. "우리 가족이 오손도손 살 수 있는 방법은?"이란 질문에 대해 "4인 가족 한 달 생활비 492만원만 있으면 돼요"라며 서민들 약 올리는 처방을 내놓는다. 더구나 "돈이 없으면 그냥 숨만 쉬면서 오손도손 사세요"라며 복장 터뜨리는 소리도 한다. 폭동을 일으킬 만한 반(反)서민 발언이지만 시청자들은 깔깔대고 웃는다. 서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뒤집어 풍자하기 때문이다.

요즘 개그맨은 정치적으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배우 장동건에서 개그맨 김병만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김병만은 개그맨 시험에 7전8기로 합격한 뒤 몸 개그로 웃음의 달인에 올랐다. 개그맨 김제동은 반(反)한나라당을 표방해 '개념 연예인'으로 각광받는다. 트위터 팔로어가 63만명인 그가 "물대포 맞으니 나 지금 기분 지랄 같다, 씨"라고 몇 자 날리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경찰 비난으로 뒤덮인다. 인터넷 방송 '나꼼수'도 MB 정부를 조롱하면서 대중을 웃기고 있다. 화염병 대신 풍자가 반정부 운동의 무기가 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은 고상한 사람을, 희극은 저속한 사람을 모방한다"고 했다. 옛날부터 인류는 희극을 비극보다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 광대가 존경받은 시대는 없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선 웃음 논쟁이 나온다. 중세 수도원에서 웃음을 죄악시하는 호르헤 수도사는 "우리 주 예수께선 희극을 입에 담지 않았다"며 "웃음은 인간의 얼굴을 일그러뜨려 잔나비로 격하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합리주의를 지향하는 윌리엄 수도사는 "이성에 반하는 불합리한 명제의 권위를 무화(無化)시키는 데 웃음은 아주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웃음은 사악한 것의 기를 꺾고 그 허위의 가면을 벗기는 데 요긴하다"고 반박한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 '웃음'이 최근 번역됐다.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코미디언'이 공연 중 급사(急死)한 원인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작가는 "우스갯소리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문학예술의 한 갈래"라며 웃음의 기원(起源)과 실체를 다룬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웃기는 이야기가 터진다. '인간의 몸이 창조됐을 때 똑똑한 두뇌를 비롯해 심장, 허파, 항문이 서로 우두머리가 되겠다며 다퉜다. 모두들 항문을 우습게 여겼지만, 항문이 힘을 주고 꼼짝을 하지 않자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결국 지저분한 일을 도맡아 하는 항문이 지도자가 됐다. 인간 사회에서도 두뇌 같은 사람보다는 항문 같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쉽다'.

베르베르는 한국어판 출간을 맞아 "한국 상황은 잘 모르지만, 프랑스에선 코미디언이 도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돈도 많이 번다. 거의 새로운 권력이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몇몇 희극인(喜劇人)은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연예인)'란 소릴 듣는다. 시사 개그가 아니라 아예 정치인처럼 발언하고 행동한다.

이런 상황이라 여야는 내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폴리테이너를 확보해야 한다. 상대방을 효과적으로 풍자해 웃음을 선점(先占)하는 쪽이 권력을 쟁취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선 이성에 바탕을 둔 논쟁보다는 반대 진영을 조롱하는 익살꾼들의 놀이판이 더 커지고 있다. 이성은 작아지고 웃음소리가 더 큰 세상이다. 진지한 쟁점이 경박한 패러디와 불분명한 소문과 불확실한 정보에 의한 풍자에 휩쓸려 도나캐나 정치 평론가 노릇을 하기 쉬운 세상이다.

폴리테이너와 정치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애매하다. '애정남' 최효종에게 물어보면 "그것 참 애매~합니다잉"이라며 어떻게 선을 그어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