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초등학교만 나와 유적발굴 50년… 그가 짚으면 나온다

"조상들이 고생했다고 제게 복을 주신 모양이지요. 아무것도 모른 채 일만 한 나한테 우째(어찌) 이런 일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기 박사님이나 김동현, 조유전, 윤근일, 최병현…. 이런 어른들께 감사하다고, 다 그 어른들 덕이라고 꼭 전해주소."

5일 황혼녘 경주 천마총 앞에서 만난 그는 고령으로 다리는 불편했지만 자신의 손때가 묻은 유적을 보면서 감격에 눈시울을 붉혔다. '김 반장' '용만이 반장', 현장에선 아직도 그를 전설적 '반장'으로 부른다. 경주 천마총, 황남대총을 비롯한 굵직한 발굴현장에서 인부로 출발해 '작업반장'으로 평생 현장을 지킨 김용만(金容滿·80)씨. 그는 발굴현장 '인부' 출신으론 처음 7일 정부 훈장을 받는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보호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해 김씨를 보관문화훈장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김씨의 학력은 1945년 경주 양북초등학교 졸업이 전부. 발굴에 대해서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발굴과 인연을 맺게 된 아이러니는 차라리 운명이었다. 경주 구황동에 살던 그는 황룡사터 발굴 때문에 집이 헐리게 된 것을 계기로 발굴을 평생 직업으로 삼게 됐다.

"1960년대 초였나…. 황룡사터 발굴한다고 살던 집이 철거됐어요. 그때 진홍섭(1918~2010·전 이화여대 교수) 어른이 오셔서 발굴 인부를 모집하니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시작한 거지. 그 뒤로 5년 전 은퇴할 때까지 했으니 꼬박 반평생을 발굴만 한 셈이지요."

그의 발굴현장 참여는 '신라'에서 시작됐지만 '백제'로도 스카우트돼 다녔다. 지표면 아래 묻혀 있는 건물터를 찾아내는 '감'이 발군이었기 때문.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군, 1973~1974년 경주 천마총과 황남대총, 1975~1976년 경주 안압지와 황룡사지, 1980~1996년 익산 미륵사지에 이르기까지 광복 이후 한국 현대 고고학사를 대표하는 각종 굵직한 발굴현장엔 '김 반장'이 있었다.

고고학 발굴조사 보고서엔 이름 한 줄 올라가지 않는 '작업반장'. 그러나 내로라하는 고고학자들도 김 반장이라면 일제히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 정도. 조유전 경기도박물관장은 "요즘 말로 하면 '발굴의 달인'"이라 했다. "건물터 찾아내는 데는 귀신입니다, 귀신. 맡겨만 놓으면 다 찾아내는, 그런 분이야말로 진정한 프로입니다." 신창수 겨레문화유산연구원장은 "'용만이 반장'은 평소 술도 거의 마시지 않고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하셨던 분"이라며 "훈장을 받으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젊은 시절 함께 발굴현장을 누볐던 최병현 숭실대 교수는 "워낙 실력이 좋았고 인부들을 통솔하는 능력도 아주 뛰어난 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고고학자에 대해서도 "그 어른"이라고 극존칭을 썼다.

자신의 작업솜씨에 대한 칭찬에는 덤덤하던 김씨는 현장 발굴 이야기를 할 때에는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천마총 발굴 때였어요. 봉분 꼭대기에서 1m 정도 파 들어가니 돌무더기가 나오데. 몇 달 걸려 돌을 걷어내고 계속 땅을 파다 보니까 금관이 나왔어요. 상상도 안 했던 곳에서 나오니 소름 끼치게 기분이 좋습디다. 흙범벅이던 걸 물로 씻어냈더니 번쩍번쩍 빛이 나더라고. 옛날 금은 요즘 금보다 광채가 더 났던 것 같아요." "발굴하다 보면 물이 고인 토기도 나와요. 무병장수한다는 말이 있어서 인부들이 그걸 나눠 마셨지요. 안계리 고분 발굴할 때 이야기인데, 이게 해골에 고인 물 마셨다고 와전되기도 했지요"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은 현장에 오면 꼭 금일봉을 나눠주곤 했어요"….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은 도굴현장. "도굴 현장을 마주칠 때마다 조상들께 죄송한 마음이었다"고 했다.

발굴 조사현장을 오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는 '김 반장'은 "우리 때는 삽과 곡괭이, 호미가 전부였고 장갑도 없었다"며 "그래도 우리 문화재를 발굴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선조들의 뜻을 이어가는 중요한 일에 평생을 바쳤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했다.

7일 오후 3시 정부대전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훈장 수여식에선 김씨와 함께 동국대 정각원장 법타스님(은관문화훈장), 이혜은 동국대 교수(옥관문화훈장)도 문화훈장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