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李의 여덟 번째 타이틀 대결 승자는?

한국기원이 발간하는 연감(年鑑) 뒤쪽엔 소속 프로기사 200여명의 프로필이 매년 실린다. 첫째 타이틀 보유자, 둘째 단위, 셋째 입단 연도, 넷째 나이 등 철저한 서열 순이다. 이창호(36)는 몇 번째쯤 등장할까. 35번째다. 94년부터 2007년까지 14년간 맨 앞에 실렸던 그는 이후 3년간 두 번째 칸으로 밀려났다가 2011년 판에서 무려 33계단을 추락했다.

무관(無冠) 전락이 원인이었다. 지난 2월 국수(國手)위를 최철한에게 내주면서 22년 만에 빈털터리가 됐다. 2011 바둑연감의 제일 윗자리에 오른 기사는 모두가 짐작하듯 이세돌(28)이다. 연감을 펴면 2008년부터 올해까지 4년째 계속 그의 얼굴과 약력을 가장 먼저 만난다.

이창호의 12월 국내 랭킹은 7위. 22개월 연속 톱랭커로 군림 중인 이세돌과 사이엔 5명이나 더 존재하지만 이창호·이세돌전을 능가할 황금 카드는 없다. 오늘(6일) 시작되는 2011올레배 바둑오픈 챔피언십 결승5번기가 바로 '양이(兩李) 대결'이다. 피라미드방식의 첩첩산중을 넘어 마지막까지 남은 둘이 이들이란 건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국내 최대인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싸움이다.

누가 이길까. 절박하기론 역시 이창호 쪽이 훨씬 더하다. 138회나 '밥 먹듯' 우승해온 그에게 '무소유'는 견딜 수 없는 허전함일 테니까. 세계 무대서도 그는 최다 우승(21회)이 무색하게 6년 넘게 타이틀 추가가 없다(마이너 기전인 중환배 우승 제외).

그 이창호가 연말로 향하면서 뚜렷한 상향 곡선을 타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제16회 LG배서 결승까지 진격, 내년 2월 중국 신예 장웨이지에(20·江維杰)와 패권을 다툰다. 국내외 2개 대회 결승서 이창호의 무관 탈출 여부가 판가름나는 셈이다.

이세돌은 현역 4관왕이다. 국제대회(비씨카드배·춘란배)와 국내 기전(올레배·원익배)을 2개씩 가지고 있다. 그만하면 배가 부를 것 같은데 본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올 연말까지 마무리될 결승 무대 총 10개 중 이세돌이 결승에 오른 건 단 2개였다. 원익배를 품에 안았지만 나머지 하나인 올레배까지 챙겨야 성에 찰 모양이다. 그는 더구나 이 대회 전기(前期) 우승자다.

승부사로서 둘은 일반의 짐작을 넘어서는 예민한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 이창호는 "세돌이와 대결할 때면 항상 남다른 전율을 느끼곤 한다. 반드시 이기고 싶다"고 했다. 이세돌은 "이창호 사범님과 결승을 두게 돼 영광이다. 배우는 자세로 둘 생각"이란 임전 소감을 내놨다.

이세돌의 말은 상투적으로 들리지만 한편으론 본심이기도 하다. 총전적 25승31패, 타이틀 대결 2대5라는 통산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최근 4연승 중임에도 그는 이창호에게 다른 기사들에게선 못 느끼는 외경심(畏敬心)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평소 그는 이창호를 극복하지 못한 아쉬움을 종종 내비치곤 한다.

둘 간의 여덟 번째 타이틀 대결인 이번 회전(會戰)은 바둑계 판도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세돌이 이긴다면 이창호의 낙조(落照)는 더욱 뚜렷해지고 이세돌은 확고한 일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창호가 이긴다면 새로운 교두보를 발판 삼아 '일인자의 천적'으로 위엄을 강화해갈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