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잠을 깨다

2년간의 깊은 침묵 끝에 '붉은 호랑이'가 포효했다. 부진에 빠졌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36·미국)가 마침내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우즈는 5일(한국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우전드 오크스의 셔우드 골프장(파72·7027야드)에서 끝난 셰브론 월드 챌린지 골프대회 4라운드에서 최종 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2위 잭 존슨(미국·9언더파)을 1타 차로 꺾었다. 불륜 스캔들과 이혼, 무릎 부상, 캐디와 결별 등으로 깊은 슬럼프를 겪던 우즈는 2009년 11월 호주 마스터스 우승 이후 749일 만에 27번째 출전한 대회에서 다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정규 대회와 비정규 대회를 통틀어 통산 83번째 우승이다.

존슨에게 1타 뒤진 2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우즈는 10·11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잡으며 2타 차 선두로 나섰으나 12번홀에서 티샷을 그린 왼쪽 벙커에 빠뜨려 보기를 기록했다. 존슨이 13번홀에서 버디를 잡은 데 이어 16번홀에서 2.5m 퍼트를 넣어 우즈를 다시 1타 차로 제쳤다. 지난 2년간 여러 번 우승 문턱을 넘지 못했던 우즈는 이번에도 위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우즈는 17번홀에서 4.5m 거리의 버디 퍼트에 성공해 파를 기록한 존슨을 따라잡았다. 마지막 한 홀을 남기고 승부는 원점.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 우즈는 이 대회 4라운드 18번홀에서 그레임 맥도웰(북아일랜드)과 동타를 이뤄 연장전으로 끌려갔다. 맥도웰이 7m 버디 퍼트를 넣은 반면 우즈는 4.5m 퍼트에 실패해 우승컵을 내줬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우즈는 18번홀에서 침착하게 1.8m 버디 퍼트에 성공해 3.5m 퍼트를 놓친 존슨을 밀어냈다. 우즈의 마지막 퍼트가 들어가는 순간 우즈는 물론이고 그를 지켜보던 갤러리 수천명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우즈는 "오랜만의 우승이지만 그지없이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했다. 우즈가 주최한 이번 대회는 세계 정상급 선수 18명만이 초청돼 실력을 겨뤘다. 우즈는 우승 상금 120만달러를 자신의 재단에 기부했다. 세계 랭킹은 52위에서 21위로 뛰어올랐다.

타이거 우즈는 우승이 없던 지난 2년간 엄청나게 많은 변화를 겪었다. 성추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고 아내와 이혼했다. 스윙 코치를 바꿨고 스윙 폼을 교정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수술대에도 올랐다. 12년간 함께 했던 캐디와도 결별했다. 한 가지만으로도 골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만한 변화를 전부 한꺼번에 겪은 것이다.

이번 우승으로 우즈는 부활을 향한 희망을 보게 됐다. '가장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샷'을 할 줄 아는 자신만의 강점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스터스·US오픈 4위, 셰브론 월드챌린지 2위, 올해 마스터스 4위 등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앉았던 '골프 황제'는 우승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한결 덜게 됐다.

◇무리한 스윙을 버렸다

이번 대회에서도 우즈의 퍼트나 스윙은 여전히 들쑥날쑥한 편이었다. 그러나 4라운드 17·18번홀에서 연속으로 버디 퍼트를 잡아내는 등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상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며 중요한 샷을 성공시키는 전성기 때 실력이 다시 나왔다. 우즈는 "부상이 회복되면서 연습량이 늘었고 새로운 스윙에도 적응이 많이 됐다"고 했다. 우즈는 지난해 스윙 코치 행크 헤이니와 결별한 뒤 새 코치 션 폴리와 1년 이상 함께 연습해왔다.

우즈는 자신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드라이버샷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스윙을 시도했다.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에도 우즈의 드라이버샷 정확도는 50~60%에 머물렀다. 이전 스윙이 몸통을 최대한 꼰 뒤 빠른 속도로 몸을 풀어내면서 무릎에 엄청난 하중을 가하는 것도 문제였다.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의 정밀 분석에 따르면 우즈의 드라이버 스윙 스피드는 0.28초로 시속 201㎞에 해당하며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 중 가장 빠르다. 이때 클럽 헤드에 실리는 무게는 45㎏. 폭발적인 스윙 때 왼쪽 무릎은 체중의 15배를 지탱하게 돼 무릎 연골에 부담이 갈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백스윙 톱 높이를 낮춰 무릎에 부담을 줄였고 팔과 몸의 움직임을 줄인 간결한 스윙으로 바꿨다. PGA 마스터프로인 나경우 제이나 골프아카데미 원장은 "몸통 회전축을 좌우로 많이 움직이지 않는 새로운 스윙이 처음보다 훨씬 편안해 보인다"며 "필요한 퍼트를 집어넣는 집중력도 좋아진 것 같다"고 했다.

◇어렵게 찾은 심리적 안정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우즈의 여유로운 태도였다. 최근 다른 대회에서와 달리 우즈는 어드레스 자세를 취하기 전 타깃 지점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프리 샷 루틴 동작이나 연습 스윙도 의식적으로 천천히 했다. 실망스러운 샷을 한 이후 욕설을 내뱉거나 골프채를 집어던지는 횟수도 확연히 줄었다.

갤러리에게 말을 건네거나 볼을 던져주는 등 팬들에게도 친절해졌다. 한덕현 중앙대 의대 교수(스포츠정신의학)는 "경기 속도를 일부러 늦추는 것은 경기의 흐름을 주도하기 위해 멘탈 코치들이 자주 권하는 방법"이라며 "섹스 중독이 짧은 시간에 쉽게 치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는 현실적인 방법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