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스웨덴 "유로화 안쓰길 잘했네"

유로화를 거부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의 선택이 옳았던 걸까. 남유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국가)에서 벗어난 영국 금융시장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채가격은 유럽 내 초우량국가인 독일에 육박하고 있고, 주가는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선전하고 있다.

북유럽에서도 비슷한 일이 나타나고 있다. 핀란드는 유로화 사용 국가라는 이유로 올 들어 주가가 30% 가까이 떨어졌고, 최근 한 달간은 국채금리까지 치솟아 불안하다.

하지만 비유로존인 인접국 스웨덴은 주가만 좀 밀렸을 뿐 여전히 건재하다. 악재가 터지면 비유로존 국가의 증시와 채권시장은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는 등 최근 이 같은 흐름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비유로존 국채, 유로존보다 낫네

연초까지만 해도 독일과 영국의 10년물 국채금리는 독일이 영국보다 0.5%포인트가량 낮았다. 두 나라 모두 국제적 신용평가사로부터 똑같은 AAA등급 평가를 받고 있지만 독일정부가 영국정부보다 싸게 자금을 끌어다 쓰고 있었다.

하지만 올 들어 이 격차가 계속 줄어들더니 결국 지난달 23일 영국 국채금리가 독일 국채금리보다 더 낮아지는 금리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최근 두 나라 국채금리는 계속해서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고 있다.

북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던 핀란드와 스웨덴의 국채금리 그래프는 11월 초를 기점으로 뚜렷하게 명암이 엇갈렸다. 핀란드 금리는 남유럽 국가의 재정위기로 인해 상승세(국채가격 하락)로 돌아선 반면, 스웨덴 국채금리는 줄곧 하락세(국채가격 상승)다. 두 나라의 국채금리는 연초까지만 해도 핀란드가 0.1%포인트가량 낮았지만 지금은 스웨덴이 오히려 0.9%포인트 정도 낮다.

◇비유로존, 재정위기 불똥 피해 가

독일과 달리 탄탄한 제조업 기반이 없는 영국은 그동안 독일의 그늘에 가려 유럽 내 2위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유지해 경제주권을 지키는 것으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켜왔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는 영국과 독일의 지위마저 바꿀 기세다. 투자자들은 불똥이 우량국가인 독일이나 프랑스에 튀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했고, 임시방편으로 영국 금융시장에 돈을 묻고 있다.

또 다른 유로존 대국인 프랑스는 자국 은행들이 남유럽 국채를 많이 들고 있다는 이유로 신용등급 강등설마저 나오는 지경이다.

영국 로이드뱅크의 에릭 완드 투자전략가는 "유로존 국가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게 영국 입장에서는 큰 행운"이라고 설명했다.

북유럽의 판도변화도 같은 해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최근 "재정위기로 유럽 채권시장에서 스웨덴 국채가 가장 안전한 자산이 됐다"고 전했다. 비유로존이면서 자원부국인 노르웨이 역시 투자자들의 관심대상이다.

◇판도는 아직 유동적

전문가들은 위기 상황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당분간 이 같은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판도가 굳은 것은 아니다.

영국은 경제성장이 지체되고 있다는 점이 부담이다. 유로존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영국에도 유리할 건 없다. 영국의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대비 0.5%에 그쳤고 내년 전망치도 0.6%에 불과하다.

스웨덴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매년 4~5%의 성장세가 이어지고 있고, 국내총생산(GDP)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39%로 유럽 내에서 가장 건전한 편에 속한다. 다만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스웨덴 통화 비중이 2%에 불과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언제까지 선호할 것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