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안주 삼아 소주 마시던 빵집 아저씨
입력 : 2011.12.06 23:30
술 마신 가장이 동네빵집에서 사들고 가던 버터크림 케이크는, 많이 먹으면 꼭 속이 더부룩했다
동네 서점과 빵집, 떡볶이집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요즘
그 느끼한 케이크를 안주삼아 소주를 마시던 빵집 아저씨가 자꾸만 생각난다
원고를 쓰는 일이 끝나면 습관처럼 늘 작업실 주변을 산책하곤 했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가 어느 날 영세한 브랜드의 작은 편의점 주인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공원으로 가는 대로변에 있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손님이 없는 가게에서 주인은 언제나 컴퓨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쉰이 조금 넘은 듯 희끗한 머리카락에 덩치보다 훨씬 작은 의자 때문인지 늘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비스듬히 걸터앉아 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감을 하고 늦은 밤 그 길을 산책하던 중에도, 낮에 잠시 산책을 하는 중에도, 아저씨는 밤이고 낮이고 24시간 가게 안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잠을 안 잘 수가! 어쩌면 저렇게 손님이 없을 수가! 생면부지 아저씨였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손님이 들어갈 때까지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아 가게 안을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아는 유일한 손님은 그곳에 생수와 커피를 사러 들어간 나 자신이 되긴 했지만.
어느 날 새벽, 그곳을 지나가다가 가게 밖으로 나와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지난 5개월 동안 한 번도 그가 가게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터라, 정말 놀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기계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혼자서 뽑기를 하고 있었다. 왜 있지 않은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핸들을 작동해 장난감이나 과자를 뽑는 인형 기계 말이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해질 때마다, 오래된 기계의 작동음(音)이 머릿속을 울리며 철컥거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가게는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건물 앞에는 '임대 문의'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임대 문의'라는 익숙한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서울은 사라지는 가게들의 도시라고.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대를 이어 뉴욕에서 수십 년 동안 동네 서점 'shop around the corner'를 하던 주인공 캐서린이 부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들어오자 결국 서점 문을 닫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엄마와 나눈 추억이 묻어 있는 가게 문 앞에 이렇게 써 붙인다. '42년 영업을 끝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마감을 하고 늦은 밤 그 길을 산책하던 중에도, 낮에 잠시 산책을 하는 중에도, 아저씨는 밤이고 낮이고 24시간 가게 안에 앉아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잠을 안 잘 수가! 어쩌면 저렇게 손님이 없을 수가! 생면부지 아저씨였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손님이 들어갈 때까지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아 가게 안을 바라보기도 했다. 결국 내가 아는 유일한 손님은 그곳에 생수와 커피를 사러 들어간 나 자신이 되긴 했지만.
어느 날 새벽, 그곳을 지나가다가 가게 밖으로 나와 있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지난 5개월 동안 한 번도 그가 가게 밖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 터라, 정말 놀랐다. 그는 어둠 속에서 기계에서 나오는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혼자서 뽑기를 하고 있었다. 왜 있지 않은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핸들을 작동해 장난감이나 과자를 뽑는 인형 기계 말이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해질 때마다, 오래된 기계의 작동음(音)이 머릿속을 울리며 철컥거렸다. 그 일이 있은 후, 내가 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왔을 때, 가게는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건물 앞에는 '임대 문의'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임대 문의'라는 익숙한 글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서울은 사라지는 가게들의 도시라고.
영화 '유브 갓 메일'은 대를 이어 뉴욕에서 수십 년 동안 동네 서점 'shop around the corner'를 하던 주인공 캐서린이 부근에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이 들어오자 결국 서점 문을 닫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엄마와 나눈 추억이 묻어 있는 가게 문 앞에 이렇게 써 붙인다. '42년 영업을 끝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 장면에서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그것은 대개의 동네 빵집 이름이 뉴욕빵집이거나 런던제과이거나 독일빵집이던 시절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생크림 케이크 대신 많이 먹으면 어김없이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끼한 버터크림 케이크를 팔았다. 우리 동네 빵집 아저씨는 저녁이면 팔다 남은 케이크를 안주 삼아 혼자 홀짝홀짝 소주를 마셨다. 그러다가 밤늦게 술 마신 가장이 빵집에 들어와 케이크를 찾으면, 설탕으로 만든 분홍색 꽃이 줄줄이 달린 버터크림 케이크와 함께 단팥빵과 크림빵 몇 개를 덤으로 얹어 주었다.
케이크가 소주 안주로 어울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이 조합이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건 아저씨가 먹어 치운 버터크림 케이크 숫자만큼 하루가 다르게 아저씨의 몸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늘 동생과 함께 곰보빵을 사서 나누어 먹곤 했다. 따뜻했던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곰보빵'을 '소보로빵'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옛날에 살던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 빵집이 익숙한 이름의 제과점으로 바뀐 걸 발견했다. 나는 그것이 '지난 42년간의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같은 폐업 인사만큼 가슴 아팠다. 내가 사는 동네에 마지막 남아있던 동네 빵집 '쉐봉'이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으로 바뀌던 날, 내가 좋아하던 '엄마손 떡볶이'가 떡볶이 프랜차이즈 가게로 바뀌던 날, 나는 참 울적했다.
빵집 아들인 소설가 김연수는 단편 '뉴욕제과점'을 쓰면서 이 소설만은 컴퓨터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멀고 먼 군산까지 가는 이유는 그저 그곳 빵집에서 파는 '단팥빵' 하나를 먹기 위해서다. 이것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의 행동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동네에서 아저씨들이 오랫동안 운영했던 가게가 하나둘 없어지고, TV나 신문에서 프랜차이즈 업체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소주에 케이크를 안주 삼아 먹던 뚱뚱한 빵집 아저씨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문득, 소주와 함께 먹는 버터크림 케이크 맛이 궁금해진다.
케이크가 소주 안주로 어울린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지만, 나는 이 조합이 딱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재미있는 건 아저씨가 먹어 치운 버터크림 케이크 숫자만큼 하루가 다르게 아저씨의 몸도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늘 동생과 함께 곰보빵을 사서 나누어 먹곤 했다. 따뜻했던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곰보빵'을 '소보로빵'이라고 한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알던 그 맛이 아닐 것이다.
얼마 전, 옛날에 살던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그 빵집이 익숙한 이름의 제과점으로 바뀐 걸 발견했다. 나는 그것이 '지난 42년간의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습니다' 같은 폐업 인사만큼 가슴 아팠다. 내가 사는 동네에 마지막 남아있던 동네 빵집 '쉐봉'이 대형 프랜차이즈 제과점으로 바뀌던 날, 내가 좋아하던 '엄마손 떡볶이'가 떡볶이 프랜차이즈 가게로 바뀌던 날, 나는 참 울적했다.
빵집 아들인 소설가 김연수는 단편 '뉴욕제과점'을 쓰면서 이 소설만은 컴퓨터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연필로 써야겠다는 결심을 작가의 말에 쓴 적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멀고 먼 군산까지 가는 이유는 그저 그곳 빵집에서 파는 '단팥빵' 하나를 먹기 위해서다. 이것이 대책 없는 낭만주의자의 행동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동네에서 아저씨들이 오랫동안 운영했던 가게가 하나둘 없어지고, TV나 신문에서 프랜차이즈 업체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소주에 케이크를 안주 삼아 먹던 뚱뚱한 빵집 아저씨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문득, 소주와 함께 먹는 버터크림 케이크 맛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