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려주는 게 제 일이잖아요. 어른도 배고프면 서러운데 아이들이 배곯는 걸 어떻게 봐요."
27년간 남몰래 초등학생 급식비를 후원해온 전영옥(여·63)씨는 7일 "오래전에 돈이 없어 굶는 아이들 얘기를 듣고 가슴이 먹먹했어요. 제 힘이 닿는 만큼은 돕고 싶었어요"라며 이렇게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병원에서 영양실장으로 근무하는 전씨는 1985년부터 서울 흑석초등학교에 학생 급식비를 후원해왔다. 한 번에 3~4명을 후원해 지금까지 모두 60~70명이 전씨의 후원으로 급식을 받았다.
하지만 27년 동안 그는 얼굴 없는 후원자로 지내왔다. 학교에선 여러 차례 도움받은 아이들이 쓴 감사 편지를 전하고 싶어했지만, 전씨가 거절해왔다. 아이들도 급식비를 내주는 천사가 누군지를 몰랐다. 그는 "아이들이 밥을 먹으며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한 회사에서 영양사로 근무하던 당시 흑석초등학교에 근무하던 동료 영양사로부터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아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이 3명을 정해주면 내가 급식비를 대신 내겠다"고 했다. "당시 남편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 기적적으로 호전됐어요. '세상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매달 급식비 10만원 안팎을 후원하는 일은 전씨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달력에 급식비 지급 날짜를 표시해두고 매달 은행에 직접 찾아가 지로로 급식비를 보냈다.
전씨는 지난 1일 흑석초등학교에서 '1985년 3월 1일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급식비를 후원하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신 큰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감사패를 받았다. 지난해 5월에 만들었지만 전씨가 1년 넘게 미루고 사양해서 이제야 전달된 것이다. 급식비를 후원한 27년 동안 전씨가 학교를 직접 방문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전씨가 학교를 방문해 감사패를 받은 것은 지난달부터 초등학교에 전면 무상급식이 실시돼 더 후원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일을 하는 한 계속 돕고 싶었다"며 "그동안 오히려 내가 행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