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BIZ] [구마노 히데오의일본 통신] 日 고령자 2948만명… 서비스를 바꿔야 그들의 마음을 잡는다

일본에서 65세 이상 고령자는 2010년 현재 2948만명이다. 세계 4위에 해당한다. 일본의 전체 인구(1억2805만명)가 세계 10위란 점을 감안하면, 65세 이상 인구가 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엔 자료를 보면, 일본은 15세 이상 인구에서 차지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35%로 세계 최고다.

◇액수는 늘어도 힘은 약하다

그러면 일본 전체 소비에서 고령자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일까? 정부 통계를 기초로 필자가 추산한 결과, 세대주가 65세 이상인 고령자 세대의 소비는 2011년 7~9월 99조1000억엔으로 전체 개인 소비(225조엔)의 44%에 달했다. 일본 고령자의 소비 지출은 매년 평균 2.8%씩 확대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고령자들이 일본의 경제 성장을 지탱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기업이 느끼는 것은 수치와 다른 듯하다.

일본엔 '지갑 끈이 단단하다'는 표현이 있다. 지갑에 돈이 있어도 좀처럼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65세가 넘으면 대부분 근로 생활에서 연금 생활로 바뀐다. 세대당 소득 수준이 크게 떨어지고 미래에 더 나아질 가능성도 없는 상황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의료와 간호 비용에 대한 걱정 때문에 절약 의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고령자 소비는 힘이 약하다. 전체 소비 금액이 커져도 소비 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고령자가 선호하는 재화와 서비스

고령자가 됐을 때 늘어나는 소비 항목을 보면 몇 가지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식료품을 예로 들면, 고령자가 되면서 소비액이 늘어나는 항목은 쌀·과일·어패류·야채 등이다. 특히 70대 이상의 과일 소비는 20대의 5배에 달한다. 고령자들은 식이섬유가 많은 식사를 선호하는 반면, 젊은이들은 씨가 있는 포도, 껍질을 벗겨야 하는 귤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젊었을 때 많이 먹다가 나이가 들면서 멀리하는 식품이 있다. 면·빵·육류·커피 그리고 외식(外食) 전반이다. 젊었을 때는 면과 빵으로 신속하게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일터에 나가면서 요리에 시간을 투자할 여유도 사라지고 있다. 반면 70세 이상 고령자의 외식비는 극단적이라고 할 만큼 액수가 적다. 고령자일수록 외식의 즐거움보다 집에서 식재료를 선택해 천천히 요리를 하는 즐거움을 택한다.

고령자는 또 건강보조식품·의약품·침구·가구·단체 여행에 투입하는 비용을 늘리는 경향이 있다. 건강과 남은 삶에 관심을 갖고 집에서 쾌적하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시간절약형 소비'를 한다면, 고령자들은 '여유(餘裕)형 소비'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소비시장의 변용과 활용법

일본의 산업은 '지갑 끈이 단단한' 고령자의 구매 의욕을 끌어내기 위해 여러 궁리를 하고 있다. 상가와 서점은 고령자가 쉴 수 있도록 여기저기 의자를 두고,'자, 휴식하세요'라는 친절한 안내문까지 붙여 놓고 있다. 고령자의 집까지 물건을 배달해 주는 택배 서비스를 시작한 편의점도 나타났다. 신문과 잡지는 몇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글자를 키운다. 레스토랑은 고령자가 선호하는 담백한 맛의 메뉴를 늘리고, 무거운 코스 요리는 분량을 줄이고 있다. 고령화가 소비시장의 서비스 성격을 서서히 바꾸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 물결 속에서 고령자의 소비를 늘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령자가 가장 빈번히 모이는 장소는 병원이다. 일본의 1인당 병원 진찰 횟수는 세계 최고로, 다른 선진국의 2배를 넘는다고 한다. 이런 경향을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병원을 고령자의 의료 소비를 촉진하는 장소로 활용한다면 커다란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

물론 일본에서도 의료를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반대가 강하다. 의료 기관이 영리 활동을 시작하면 공적 의료시스템이 파괴된다는 견해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의료 제도는 공적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에 대해 보험외(外) 진료를 병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보험 진료와 보험외 진료를 혼합시키는 것을 인정하면, 영리 기업이 의료 영역에 참여함으로써 의료 본연의 가치가 왜곡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일본에서도 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미일 FTA에 해당) 반대론의 중요한 이유로 제기되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변화를 기회로 바꾸려면, 규제 완화에 앞서 의견 대립을 조정하는 사회적 난제도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