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름 올린 책만 55권… 최재천은 지식 편집자다

●감히, 아름다움
최재천 엮음｜이음｜248쪽｜1만3000원

●'다윈의 대답' 총서
이음｜총 8권｜각권 8800원

그는 '트로이의 목마'가 아닐까. 인문학이 자연과학의 성 안에 몰래 들여보낸. 아니 그 반대인가. 개미 연구로 이름을 알린 이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는 일찍이 '통섭'의 나팔을 높이 불더니 급기야 인문학의 정수라 할 미학 영역에까지 깃발을 꽂았다. 최재천(57)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그는 이번 주 새책 '감히, 아름다움'과 '다윈의 대답' 총서를 동시에 내놓았다. '감히, 아름다움'에서 그는 이화여대 통섭원 심포지엄에 쏟아져나온 구슬 같은 통찰을 하나로 뀄다. '다윈의 대답'은 현대 사회 쟁점에 대한 최신 진화론자들의 답변 모둠. 1권 '호모 심비우스'를 그가 직접 썼다.

그의 이름을 단 번역서만도 지금껏 12권에 이른다. 제자들의 원서 독해와 글쓰기 훈련을 겸한 공동 작업의 결실이다. 초판 인세는 제자 몫. 원고를 빨간 펜으로 꼼꼼히 고쳐주다보니 '피바다'로 불린다. 오후 6시면 어김없이 집에 와서 읽고 쓰고 기획한다. 그리고 사람들 모으고 책 내는 것. 남들 눈엔 단조롭겠지만 스스로 더없이 행복하다는 최 교수의 일상이다.

'에디터 최재천'은 일찍부터 사람들을 끌어모아 일 벌이는 '산파'역에 재주를 보였다. 대학 시절에도 수업보다 독서 동아리에 더 열성이었다. 회장까지 맡아 매주 책 한 권씩 읽고 토론하고 1년에 2권씩 문집을 냈다. 중2 때 백일장에서 장원한 소년 시인, 고교 때는 미술반에 발탁된 꿈나무 화가, 대학 때는 신춘문예 소설 등단을 꿈꿨던 '문청'임을 알면 지금 경계를 허무는 종횡무진은 일찌감치 예견된 일. 8일 그를 만났다.

―지금까지 낸 책이 얼마나 되나.

"저서가 11권 정도, 편저에 공저·역서까지 합치면 55권쯤 된다. 처음 쓴 책이 '개미제국의 발견'(1999년)인데 내년 3월 존스홉킨스대 출판부에서 영문판이 나온다. 그러고보니 사람들 불러모아 글 써서 묶어 내는 일을 참 많이 했다. 1997년 케임브리지대출판부에서 영문서 두 권 기획할 때도 학자 60명 정도를 모았고 지난해 다시 네 권짜리 동물행동학 백과사전 만들 때도 척추동물 부분 기획을 맡았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2001)가 16만부, '개미제국의 발견'(1999) 5~6만부, '통섭'(2005)이 2만부 정도 나갔다."

―직접 쓰는 것과 산파역, 어떤 게 더 좋은가?

"조용한 밤에 혼자 앉아 글 쓰는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평소의 여러 생각들을 종합해서 뭔가를 풀어낼 때 희열…. 주제를 놓고 사람들 모으는 일은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산파역이 연구에 방해되지는 않나.

"하버드대에 명예교우회(Society of Fellows)가 있다. 로렌스 로월 총장이 사재(私財)로 만든 조직인데 대가들을 한 자리에 모아 잡담만 하게 해도 새 학문 길이 열린다며 마련한 것이다. 그걸 본뜬 미시간대의 명예교우회 주니어 회원으로 3년 활동했다. 매주 수요일 각 분야 회원들이 점심 먹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로 시작해 밤에야 헤어졌다. 월 1회 시니어 회원들과도 저녁 먹으며 토론했다. 3년 동안 약 200개 주제를 다뤘다. 그 때 3년은 나머지 평생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왜 지금 다시 다윈인가?

"영국은 이제 대표 과학자로 뉴턴이 아니라 다윈을 꼽는다. 다윈 이론은 파고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계도 뉴턴 경제학의 시대가 끝나고 다윈 경제학의 시대가 왔다. 뉴턴 경제학이 경제 주체인 인간을 이성적 입자로 본 데 반해 다윈 경제학은 개인의 본성과 심리·행동을 보다 복합적으로 이해한다. 그런데도 국내는 무지하다."

―'다윈의 대답' 첫 권에서 "인간이 반드시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고 썼는데.

"화석 자료를 바탕으로 통계를 내보면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종의 90~99%가 멸종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라고 대단한 게 아니다. 종말론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좀 더 겸허해지자는 것이다. 우리가 태어난 것은 불과 20여만년 전이다. 모든 종 중에서 거의 막둥이인데 우리가 다른 '윗분'들을 해치고 있다. 제목 '호모 심비우스(Symbious)'는 자연 생태계와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공생하는 인간'이란 뜻이다."

―또 어떤 계획이 있나?

"올겨울에 쓰고 싶은 책이 있다. 다음 대통령은 복지 대통령이라는데 내 생각에 복지의 종국은 교육이다. 지금 가난한 사람에게 떡 하나 더 쥐여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교육을 제대로 세워야 나라가 산다. 길게는 죽기 전에 '생명'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 생물학적 관점 말고도 종교, 예술 등 여러 각도에서 본 생명. 10년 전부터 조금씩 쓰고 얼개 잡고 하는데 내 모든 것을 담은 '불후의 명저' 같은 걸로 구상 중이다."

☞감히, 아름다움

'감히, 아름다움'에는 인문·자연부터 예술·건축까지 각 분야 대표 지성 11인의 현장 미학이 빛난다. 작곡가 이건용은 아름다움을 "때가 빚어내는 변주"라 부르고, 건축가 민현식은 '나뭇잎의 떨림'을 응시한다. 시각디자이너 안상수는 '대칭과 비대칭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글의 혁명성'을 예찬하는가 하면, 진화심리학자인 전중환은 "아름다움이란 것도 아프리카 초원 시절 이후 수백만년간 축적돼온 인간 본성"이라 요약한다.

☞다윈의 대답

진화론의 현주소를 알리는 총서. 예일대출판부의 기획총서 '다위니즘 투데이' 등을 근간으로 해서 과거에 나온 역서 4권을 포함해 다시 8권으로 묶어 냈다. 첫 권을 새로 쓴 최재천 교수는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질문한다. 그 밖에 '인간 본성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나, 진화에 의해 결정되나' '여자들은 왜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나' '소득불평등이 건강 불평등까지 낳는가' 같은 도발적인 질문을 놓고 현대 진화론의 대가들이 풀어서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