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는 쇼, 이제 그만

1960년 5월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의 외국인 클럽에서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형태의 쇼가 열렸다. 무대에 선 가수는 2년 전 미8군 무대를 통해 데뷔한 신인가수 패티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한 뒤 그의 노래를 감상한 정장 차림의 남성, 롱드레스 차림의 여성들이 박수를 쏟아냈다.

패티김 측은 "우리 가요계 사상 첫 디너쇼였을 것"이라고 했다.

연말·연초나 명절 때마다 단골행사로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는 디너쇼. 패티김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디너쇼의 '원조' 격이다. 그가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서울(21~22일)·부산(24~25일)·대구(29~30일)를 끝으로 더 이상 디너쇼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주변에서 놀라는데 5년 전부터 준비했던 일"이라고도 했다. "오랫동안 서울·부산 같은 큰 도시에서만 공연을 했어요. 그런데 이젠 전국의 중소도시에도 훌륭한 공연장이 많이 생겨나면서 더 많은 팬들과 만나게 됐죠. 소박한 옷차림으로 객석을 가득 메운 분들을 보면서 '이게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구나'라고 마음먹게 된 겁니다."

그는 "이 기회에 '패티김은 (디너쇼를 자주 하는) 비싼 가수'라는 이미지도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제가 그동안 호텔 그랜드볼룸 같은 값비싼 공연장만 고집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에요. 제 노래들이 체육관이나 공설운동장 같은 곳에서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은 곡들이다 보니 많은 분들께 못 들려 드렸을 뿐입니다."

공연시장이 성장하면서 동료나 후배 가수들이 잇달아 디너쇼에 뛰어드는 것도 그의 '디너쇼 은퇴'를 재촉한 요인이라고 한다. "전 제가 한국 디너쇼의 파이오니아(개척자)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한동안 디너쇼를 할 수 있는 가수는 저와 이미자·나훈아·조용필 등 손에 꼽을 정도였죠. 하지만 지금 디너쇼를 준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이제 자리 하나쯤은 비워야죠."

패티김은 디너쇼 초창기부터 유독 깐깐한 '격식'을 요구해 호텔 관계자들을 난감하게 했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디저트 접시와 커피잔까지 테이블에서 비우기 전에는 절대 노래하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초우' 이런 노래들을 어떻게 쟁그랑 쟁그랑 잔 부딪치고 서빙하면서 들을 수 있어요? 이래서 도도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덕에 디너쇼의 에티켓을 확립했다고 자부해요."

'디너쇼 여왕'의 다음 계획은 뭘까. "뮤지컬입니다. 이미 기획 단계고, 몇 년 안에 무대에 올릴 거예요. 내 노래들로 내 인생을 노래한 뮤지컬은 평생의 꿈이었어요." 미8군 데뷔 시절, 1960년대 미국·일본 활동 시절, 작곡가 고(故) 길옥윤과의 사랑·이별 등 자신의 삶 전반을 다룰 것이라고 한다. 소속사는 "패티김 자신도 어떻게든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디너쇼 문의 (02)518-8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