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빈 병 모아… 더 어려운 이들과 사랑을 나누다

구청에서 쓰레기를 줍고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 10명이 800만원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이들 중 5명은 한 달 250시간 일해 98만원이나 93만8000원을 버는 사람들이다. 십원도 허투루 쓰기 어려운 이들은 하루종일 청소일을 하면서 추가로 800만원을 모았다. 쓰레기 더미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내는, 한 번 더 '하기 싫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800만원을 모으는 일에 앞장선 사람은 서울 중구청 위생담당 김용화(42) 반장이다. 1992년 기능직 공무원 9급으로 중구청에 들어와 1997년부터 청소업무를 맡아 왔다. 김 반장은 오전 6시 7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구청 본관 3층의 바닥 먼지를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화장실을 돌아보며 점검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김 반장을 비롯해 위생원들은 사무실·화장실·복도·계단 청소, 청사 내벽 먼지 및 얼룩 제거, 구청 행사 지원 등 기본 업무를 마친 다음에 나머지 시간을 쪼개 재활용 작업을 벌여 한 달에 10여만원을 벌었다. 재활용 쓰레기를 처분해 들어온 돈은 위생원들의 간식비나 출·퇴근 교통비 등으로 쓰였다. 위생원들에게 주어지는 작은 복지 혜택이었다. 김씨는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재활용 작업을 벌여도 대기실에서 타 마실 커피를 살 수 있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2010년부터는 일반 쓰레기통에서도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기로 마음먹었다. 재활용 봉투에서 분리 수거하는 작업만도 벅찬데 일반 쓰레기까지 분류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다른 위생원들이 "안 그래도 힘들고 바쁜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했지만 김 반장은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돈도 더 벌고 구청 예산도 절약할 수 있다"며 설득했다.

이들은 구청 종량제봉투에 담긴 쓰레기를 쏟아놓고 안에 담긴 병과 캔, 플라스틱을 분리해나갔다. 종량제봉투에 재활용 이 가능한 병이나 캔 등이 마구 섞여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업으로 중구청의 종량제쓰레기 봉투 구입비용도 크게 줄었고, 한 달에 1t도 안 되던 재활용 분리수거가 2t 가까이 나왔다. 굳이 안 해도 되는 쓰레기 분리 수거작업을 통해 1석2조의 효과를 얻은 것이다.

재활용을 처리하면서 들어오는 돈이 30만원이 넘기 시작했고, 김 반장과 동료들은 이 돈을 은행 계좌에 차곡차곡 모았다. 지난달 통장에는 760만원이 넘는 돈이 통장에 찍혔다. 김 반장은 "우리는 일을 할 수 있어 몇푼이라도 받지만, 아예 돈을 못 버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이 돈을 주자"고 말했다. 힘들고 수고스러운 작업을 해왔던 동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김춘자(53)씨는 "화장실 휴지통까지 뒤집어서 종이컵 등 재활용 쓰레기를 골라낼 때는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란 생각이 들어 서글퍼지기도 했다"며 "지금은 내가 하는 일로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난다"고 했다. 지난 10월부터 청소 일을 시작한 이금복(57)씨는 "처음에는 쓰레기를 분리할 때 '에이 xx' 하는 욕이 나왔다"며 "그러다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졌다"며 웃었다. 차병천(51)씨는 "우리는 그래도 월급이 나오는 사람이다. 최저 임금을 받지만 그걸로 만족한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10명의 중구청 위생원들은 이번에 모은 돈까지 합쳐 800만원을 13일 중구청 광장에서 열리는 '희망 2012 따뜻한 겨울 보내기' 모금행사에 내기로 했다. 김 반장은 "가끔 민원인들이 청소한다고 우리를 무시하고 욕할 때는 서럽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보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은 돈이지만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일할 때 느끼는 설움은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반장은 요즘 돈 모으는 재미가 들어 쓰레기가 들어오면 동료들에게 외친다고 한다. "돈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