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집회(일본군 위안부 해결촉구 집회) 1000회… 20년째 세계서 유례 없는 의지(단일 주제로 최장… 500회째 기네스북에 등재)

일본군 위안부(정신대) 문제 해결 촉구하는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인 13일 오전 8시 김요지(87) 할머니가 서울 중랑구 서울실버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오랜 투병 생활의 끝은 힘을 다한 촛불이 꺼지듯 조용했다.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에 강제로 끌려가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짐승보다 못한 생활, 할머니의 인생은 그때 짓밟혔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신화병원에 마련된 장례식장에는 남동생 김상두(82)씨 부부만이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올케 박옥순(76)씨는 "우리 가족도 내일 집회에 가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문객은 김씨 부부의 지인 등 10여명에 불과했다.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정부에 등록된 정신대 피해자 할머니 234명 중 171명이 숨지고 63명만이 남았다. 생존해 있는 할머니들의 평균 나이는 만 86세. 지난 5년간 매년 10명 정도가 태산 같은 한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다.

◇1000회 맞는 수요집회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처음 열렸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 30여명이 모여 "일본 정부는 정신대 희생자들 위령비를 건립하라"는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 일주일 전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수요집회가 19년 11개월 6일 만인 14일 1000회를 맞는다. 처음 얼마 동안은 한 달에 3∼4번씩 비정기적으로 열리다 1993년 2월부터 수요일 오전마다 집회가 열리고 있다.

수요집회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때 집회를 취소했던 것과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항의집회를 추모집회로 대신했던 것을 제외하곤 빠짐없이 이어졌다. 할머니들은 일곱 번째 집회부터 참석했다. 500회 집회가 단일 주제로 개최된 집회로는 세계 최장으로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뒤 매주 기록을 경신 중이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1000회를 맞았다는 것은 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다

수요집회는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음지에 묻혀 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렸다. 정부는 수요집회가 시작된 지 2주 후 실무대책반을 만들어 관련 증거 자료를 조사하고 정신대 피해자 신고를 받았다. 국제사회의 호응도 있었다. 1993년 빈 세계인권회의 결의문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됐고 1998년 유엔인권소위원회가 일본에 위안부 문제의 조기해결을 권고하는 맥두걸 특별보고관 최종보고서를 환영한다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2007년에는 미국의 마이크 혼다 민주당 의원 등 7명이 제출한 위안부 피해자 관련 결의안이 미 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세월 동안 일본 정부는 정신대 문제에 대해 침묵과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할머니들은 일본 의회의 사죄 결의, 피해 배상, 종군 위안부 범죄 인정,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위령탑과 사료관 건립 등 7가지 요구 사항을 내걸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 사이 할머니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들의 영혼을 상징하는 '노란 나비' 숫자는 지난 몇 년간 눈에 띄게 늘었다.

◇일본대사관 앞에 평화비 제막식

14일 정오 할머니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를 형상화한 1.2m 높이의 '평화비'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다. 일본 정부는 평화비 건립이 외교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한국 정부에 제지를 요청했다. 관할 종로구청도 아직 허가를 내주지 않았지만, 정대협 측은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다"며 제막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 일본뿐 아니라 미국, 독일 등 전 세계 9개국 37개 도시에서도 이에 호응해 정신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연대 집회가 개최된다. 김복동(85) 할머니는 "'그냥 몇 번 하겠거니'하는 마음으로 나간 것이 20년이나 계속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더 이상 수요집회를 할 필요가 없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