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 자서전에 나오는 결단의 순간이다. 우리나라 경제 개발 초창기를 돌아보면 바로 그때가 우리나라의 운명을 가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 국내 정치권은 농수산 지원 용도로 쓰일 자금을 전용하는 데 반대했다. 국회의원의 80%가 농촌 출신이어서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정희와 박태준은 국가의 50년 대계를 위한 결정을 했다. 만약 그때 제철소 대신 농수산업을 선택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을 것이다. 물론 농업에 투자와 지원도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인 경제·산업 효과를 보면 '산업의 쌀'로 불리는 제철산업 육성이 더 중요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포스코는 현재 연간 철강 생산량이 3700만t, 연매출 39조원에 이르는 글로벌 톱 4위권의 철강업체가 됐다. 생산능력이나 제품 경쟁력에서는 약 40년 전 포항제철소 건립을 지원해줬던 일본의 신(新)일본제철을 오히려 능가한다. 이뿐만 아니다. 포스코에 이어 현대제철이나 동국제강 등 대규모 철강업체들이 잇따라 건립되면서 한국의 철강은 올해 수출액이 300억달러가 넘는 한국의 6대 수출품에 올랐고 고용인원도 8만명을 넘었다. 또 자동차와 IT·조선·플랜트 등 현재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철강 소재의 자립(自立)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4일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스티브 잡스 애플 CEO가 세계 IT업계에 남긴 영향보다도 박 회장이 한국 산업과 경제에 미친 영향이 몇 배는 클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우리가 다시 그런 선택의 기로에 서면 정치권은 어떤 선택을 할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국가적인 투자를 해야 하느냐를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어떤 사람은 복지를, 어떤 사람은 지역 개발을, 어떤 사람은 교육 투자를 이야기할 것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42년 전 포항제철을 선택한 두 거인(巨人)의 결단을 두고두고 곱씹어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