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이젠 세계의 전설로

◇가을의 전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에게 춘천국제마라톤은 '가을의 전설'로 불린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삼악산을 바라보며 의암호를 끼고 달리는 코스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서울(잠실~성남)에서 춘천으로 코스를 옮긴 것은 1991년 대회부터였다. 매연과 교통난을 피해 2시간10분의 벽을 깨는 것이 목적이었다. 지방 도시 중 처음으로 공인을 받은 춘천 코스는 맑은 공기와 적당한 경사 구간 등 마라토너들의 '도전 정신'을 시험할 여건을 갖췄다. 춘천에서 대회가 열린 첫해 김완기가 한국기록(2시간11분02초)을 수립해 기대에 부응했다. 2010년 대회부터는 레이스 막판 41㎞ 지점의 오르막을 레이스 초반으로 옮기고 전체적으로 코스를 평탄하게 바꿔 더 큰 호응을 받았다.

국내 최고의 '가을 달리기 축제'로 꼽히는 춘천국제마라톤대회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증하는 최고 등급인 골드대회로 승격했다. 올해로 65회 대회를 치른 춘천마라톤은 그동안 국내 마라톤의 산 증인 역할을 했다. 1960년대 침체기에 마라톤 정신을 일깨웠고, '풀뿌리 마라톤'의 원조였으며, 자선 마라톤이라는 새 장을 열었다.

◇손기정을 기리며

춘천국제마라톤은 고 손기정 선생이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지 10주년이 되는 1946년 '제1회 조선일보 단축마라톤대회'로 출발했다. 참가자 45명이 손 선생에게 직접 코스 설명을 들은 뒤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우이동까지 왕복하는 24㎞ 코스를 달렸다. 이듬해 '제1회 손기정 세계제패기념 조선일보 마라톤대회'로 격상돼 손기정 선생이 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날짜인 8월 9일에 개최됐다. 코스와 거리가 바뀌고 6·25 전쟁으로 대회가 취소되기도 했지만 개최일자는 수년간 그대로였다. 1970년 '손기정배 쟁탈 조선일보 마라톤대회'로 이름을 바꾸면서 풀코스 대회로 발전했다. 8월의 삼복더위 때문에 기록을 제대로 낼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 해부터 10월에 대회를 열었다. 우승자는 손 선생이 베를린에서 가져와 양정고에 심은 월계수 가지로 만든 관을 받았다.

◇스타의 산실

춘천국제마라톤에선 수많은 스타들이 탄생했다. 1946년 대회 우승자 서윤복은 이듬해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고, 1956년 양정고 재학 중 춘천마라톤에서 우승한 이창훈은 2년 뒤 도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60년대 이후 한국 마라톤의 침체기가 계속되자 1981년 춘천마라톤은 한국신기록 우승에 300만원, 2시간10분대 우승에 100만원 등 기록 포상금을 내걸었다. 이후 한국 마라톤에 제2의 전성기가 열렸고 대회기록이 해마다 1~2분씩 단축됐다.

1985년 춘천마라톤 우승자 김원탁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1987년 춘천마라톤에서 우승한 김재룡은 1993년 보스턴 마라톤 2위, 세계선수권 4위에 올랐다. 1994년 대회 최고기록(2시간9분59초)으로 우승한 이봉주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세계 톱클래스에 합류했다. 1997년 권은주가 춘천마라톤에서 세운 한국 여자 최고기록(2시간26분12초)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풀뿌리 마라톤

춘천국제마라톤은 1995년 처음으로 일반인 260명을 참가시키면서 마라톤 붐을 일으켰다. 일반인 참가자 수는 1997년 5000명을 넘어섰고 1999년 1만2000여명으로 급증했다. 2003년부터는 본격적인 '2만명 시대'가 열렸다. 전자칩을 이용한 기록 계측, 페이스 메이커 도입, 마라톤 캠프 운영, 실시간 기록 문자 서비스 등을 제공했고 2009년부터는 춘천마라톤 10회 이상 참가자를 기념하는 '명예의 전당'을 만들었다.

2006년부터 춘천마라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자선 마라톤으로 새로운 전통을 세워가고 있다. 올해 대회에서는 1m 달릴 때마다 1원씩 기부받는 '1m 1원 캠페인' 등을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