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리' 뿌리는 전통 회화

은빛 강물 위에 무지개가 걸리고, 몸통보다 더 큰 동그란 얼굴에 미소 띤 입매,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지닌 인물이 강물에 비친 제 모습을 내려다본다. '동구리'. 권기수(39)의 작품에 작가의 분신으로 항상 등장하는 캐릭터다. 31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권기수 개인전 'Reflection:明鏡之水'에는 배를 타거나 혹은 나뭇가지에 걸터앉는 등 다양한 상황에서 물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동구리'를 그린 'Reflection(반영)' 시리즈 30여점이 나온다.

"올해 한국 나이로 40이 되면서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감, 작가로서의 미래…. 앞으로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저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Reflection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홍익대 동양화과 출신의 권기수는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협업)에 적극적인 대표적인 작가다. '동구리'는 남성복 브랜드 트루젠, 레노마 골프 웨어 등 다양한 상품 디자인에 응용됐다. 2008년과 지난해엔 구글과 손잡고 홈페이지 이미지 배너 작업 등을 하기도 했다. 작업 방식도 현대적이다. 컴퓨터를 이용해 스케치를 하고, 도색(塗色)에는 10여명의 조수들이 따라붙는다.

활발한 콜라보레이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과 유사한 작업 방식 때문에 그에겐 항상 '한국적 팝 아티스트' '상업적인 작가'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는 "'팝 아티스트'라는 표현도, '상업 작가'라는 말도 마뜩잖다"고 했다. "서구의 팝 아티스트는 대중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러나 제 작품의 뿌리는 동양 전통 회화입니다." 작품에 자주 나오는 매화, 대나무, 난초 등은 사군자(四君子)에서, 바위에 기대 물끄러미 물속을 내려다보는 동구리의 모습은 조선 전기 화가 강희안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등에서 따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상업작가'라는 평에 대해서는 "작품 홍보를 위해 콜라보레이션을 하지만 그걸로 큰돈을 번 적은 없다. 구글에서 받은 로얄티는 전액 의료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내 주된 수입원은 작품 판매로 얻는 돈이다"라고 했다. (02) 519-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