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봄' 지다

바츨라프 하벨(75) 전 체코 대통령이 지병에 따른 합병증으로 18일 타계했다.

작가 출신인 하벨은 1968년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1989년 11월에는 공산 독재 체제에 항거하는 반체제 연합 '시민포럼'을 조직해 50만여명을 모아 시위와 총파업을 단행했다. 결국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일당 독재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해 41년간의 공산 체제가 무너졌다. 이때부터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화 혁명을 이끌어낸다는 의미의 '벨벳혁명'은 보통명사처럼 쓰이게 됐다. 그는 벨벳혁명 후 노벨 평화상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그는 공산주의 체코 시절 프라하의 부유한 건축가 집안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인문계 교육을 받지 못하고 야간학교와 기술대학 경제학부를 다녀야 했다. 문학도를 꿈꿨던 하벨은 연극에 뛰어들어 1963년 희곡 '가든파티'를 발표하면서 대표적인 반체제 작가로 자리 잡았다. 가든 파티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아가는 미래가 없는 중산층 젊은이 휴고 플루데크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1978년에는 '힘없는 자들의 권력'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다른 공산주의 국가의 반체제 운동에 큰 영향을 줬다. 하벨은 타계하기 전까지 시와 희곡을 20여편 썼다.

그는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행을 주도했다. 체코슬로바키아가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 1993년에는 첫 체코 대통령이 됐다. 그는 2003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체코를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켰고, 체코가 2004년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되는 데도 초석을 마련했다.

하벨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의 모델이기도 했다. 류샤오보는 2008년 일당 독재 폐지와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08헌장'을 주도했다. 하벨이 1977년 민주화와 인권 존중을 요구하며 발표한 '77헌장'을 본뜬 것이다.

1992년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으로 처음 방한했던 하벨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이후 체코 기업들의 민영화 작업에 한국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했다. 대통령 퇴임 후엔 미국의 워싱턴포스트 등을 통해 북한의 정치범 탄압 실태를 고발하면서 미·일·EU·한국 등 민주국가들이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에는 서울평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