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그룹 중 4곳(삼성·현대차·롯데·GS)만 "내년 투자 확대"

대기업들이 내년 투자 계획을 놓고 막판까지 고심하고 있다. 유럽 재정 위기 확산과 내수 경기 불안 등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으로 경기 전망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본지 산업부가 국내 10대 그룹의 내년 투자 계획과 전망치를 조사한 결과 투자액을 소폭이라도 늘리겠다고 밝힌 그룹은 삼성·현대차·롯데·GS 등 네 곳에 불과했다. SK그룹은 하이닉스 인수에 따른 투자 수요가 많지만 최태원 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로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아직 잡지 못하고 있다.

나머지 그룹은 올해와 비슷하거나 소폭 축소한 수준에서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다. 포스코·현대중공업·한화는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LG·한진은 올해보다 투자 규모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투자를 동결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기업 덩치가 클수록 그에 걸맞은 투자가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경제 상황이 '시계 제로'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업황에 따라 올해 수준 동결·감소하는 곳도 속출

투자를 동결하거나 축소하겠다는 그룹의 특징은 철강·조선·LCD(액정표시장치)·태양광과 같은 주 업종이 불황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는 올 초 7조3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는데, 실제 투자는 6조원이었다. 국제 철강 가격이 내려가고 내년 수요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광양제철소 1고로 개·보수를 위해 내년에 집행하려던 3000억원 규모 투자를 2013년 이후로 연기했다.

LG그룹에서 가장 많은 투자를 집행하는 LG디스플레이는 투자 규모를 올해 4조원대에서 내년 2조원대 중반 정도로 줄였다. 중국 광저우에 건설하려던 8세대 생산 공장 착공을 연기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LG그룹 전체의 투자 규모는 올해(19조5000억원)보다 소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올해 최신식 A380 5대를 도입하는 등 3조9000억원을 투자했으나, 내년에는 올해에 못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업황 악화로 선박 수주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현대중공업은 올해(2조2000억원)와 비슷한 시설·기술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한화는 방위산업, 리조트 등 분야에서 올해(2조원)와 비슷한 투자 계획을 잡았다.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 상황

SK는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 부회장을 향한 검찰 수사 때문에 구체적인 투자 계획을 못 잡고 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하이닉스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투자를 확정해야 하는데, 검찰 수사로 그룹 계열사별 투자 계획을 내놓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올해(43조원)보다 소폭 증가한 수준에서 내년 투자 계획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세계경제가 어려우니까 보통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KDB대우증권은 삼성전자의 내년 반도체 부문 투자가 사상 최대인 14조원 규모라고 추정했다.

특히 사상 최초로 비메모리 반도체 투자(7조5000억원)가 메모리 반도체(6조5000억원)를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낸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제철 당진 3고로의 본격적인 시설 공사를 내년에 벌이는 등 올해보다 투자 규모를 늘릴 전망이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부에서 내년 거시경제 전망을 했던 올 10월 전망과 비교하면 현재 국내외 경제 상황이 빠른 속도로 냉각되는 분위기여서 내년 투자 결정을 확정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