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증후군 화가 데뷔한 날, 재능이 모였다

"그림을 본 순간 '사람이 이런 상상이 가능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훌륭하더군요."

서울 관훈동 본화랑에서 19일 막을 내린 전시회를 둘러본 산악인 엄홍길(51) 대장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서웅남(36)씨 얼굴에 미소가 번지더니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비틀었다.

서씨는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난 1급 중증 장애인이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보호시설인 '나눔의 집'에 산다. 그가 이면지 등에 그린 그림 16점을 태어나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전시회 이름은 '서웅남의 세상 나들이, 행복만땅'이다.

서씨가 나눔의 집에서 홀로 그려온 그림을 '발견'한 것은 김묘은(36) '행복한 웹＆미디어' 대표다. 석 달 전에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갔다가 우연히 그림들을 보게 됐다.

"대담하고 강렬한 원색의 그림들이 심상찮게 느껴졌어요. 다른 작품까지 그 자리에서 모두 봤죠. 그리곤 바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 대표는 후원자를 찾아다닌 끝에 대한적십자사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자기 돈도 2800만원이나 들여 서씨 그림들로 다이어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수익금은 모두 나눔의 집에 기부된다.

생애 첫 특별한 전시회를 여는 서씨를 위한 재능 기부도 이어졌다. 일본인 화가인 다카노 에리(39)씨는 화구(畵具) 사용법을 가르쳐주었다. 개막식 사회는 임평순 KBS 아나운서가 맡았고, 센트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축하곡을 연주했다.

나눔의 집, 목사님과 어머니 등 주변 풍경과 인물이 주 소재인 서씨의 그림은 마커와 색연필을 이용해 빨강·노랑·초록 같은 원색을 많이 쓰는 것이 특징이다. 다카노 에리씨는 "빨강이나 분홍 같은 원색은 서씨의 순수하고 여린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눔의 집 박춘성(55) 간사는 "재작년 웅남씨가 여기 온 뒤 종일 그림만 그려 실은 걱정도 많이 했다"며 "하지만 그림이야말로 웅남씨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사흘간의 전시회를 찾아온 관람객들도 그림을 둘러본 뒤 입구에 선 서씨에게 악수를 청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