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후계 불안" 금융시장, 김일성 사망때보다 더 쇼크

김정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19일 한국 금융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63.03포인트(3.43%) 급락해 1776.93으로 마감했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주 말보다 16.2원(1.4%) 오른 1174.8원에 거래를 마쳤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주말보다 0.09% 포인트 급등했다.

17년 전(1994년 7월 11일) 김일성 사망 당시 주가가 7.5포인트(0.8%) 내리고, 환율이 0.3원(0.04%) 오른 것과 비교하면 충격파가 훨씬 컸다.

◇김일성보다 파장 컸던 김정일 사망, 왜?

①불안한 후계 구도

전문가들은 현재 북한 체제가 김일성이 82세로 사망했던 1994년 당시보다 훨씬 취약한 것으로 평가한다. 1994년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52세로 이미 수십년간 수업으로 권력을 이어받을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대를 이은 권력 세습의 정당성과 무관하게 김일성 사망이 체제 불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희박했던 셈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망은 후계 구도가 불안한 상황에서 터진 '사고'에 가깝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김정일의 공식 후계자인 김정은은 29세로 너무 어리다. 권력 승계를 준비한 시간도 2009년부터 2년 안팎으로 너무 짧다"고 평가했다.

②개방도 높아진 국내 금융시장

1994년 당시보다 현재 국내 금융시장의 개방도가 한층 높아진 것도 충격이 컸던 원인이 됐다. 1994년 당시 국내 외환시장은 관리 변동환율제를 택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의 상하한 변동 폭이 정해져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종목별 지분 보유 가능 비율도 시가총액의 20% 이내로 제한돼 있었다. 대형 사고가 터졌다고 해서 갑자기 환율이 치솟거나, 외국인이 주식을 팔아치워 시장에 충격을 줄 정도가 아니었던 셈이다.

③유럽발 악재 + 통일 비용 부담

김정일 사망이라는 악재가 하필 유럽발 재정 위기가 재부각되는 국면에 터진 것도 충격을 증폭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김정일 사망이 단기적으로 지정학적인 리스크를 높일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유럽 재정 위기다. 두 가지 위험 요소가 함께 부각된 까닭에 충격이 더 컸다"고 말했다. 여기에 김정일 사망이 남북통일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수로 인식되면서, 통일 비용이 한국 경제에 안길 부담에 대한 우려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남북한이 2015년 통일된다면 통일 비용을 546조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이는 내년 우리나라 예산(326조원)의 1.5배에 이르는 돈이다.

◇"위기 오래간다" vs "한국 경제에 기회다"

김정일 사망이란 변수를 심상치 않게 평가하는 전문가들은 사건의 여파가 1994년과 달리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한다.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과로사로 판명 나더라도, 북한 지휘부 공백에 따른 불확실성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명활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실장은 "북한의 권력투쟁 등 불안이 계속되고 강경파가 득세하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져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품 투자의 귀재'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이날 경제 전문 매체 조선비즈(chosunbiz.com)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김정일의 사망은 남북한 통일이 훨씬 가까워졌다는 뜻으로 한국 금융시장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왜 파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2000억원어치를 팔고 나갔다. 그는 과거에도 북한을 투자 유망 지역으로 꼽은 바 있다. 이날 방위산업주인 휴니드·퍼스텍이 상한가를 기록했고, 삼양식품(상한가)·농심(2.7%) 등 생필품 관련주도 주가가 급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