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미는 웃음에도 서글픔이… 사진찍기 힘들었죠"

1960년대 말 처음 코카콜라가 국내에 수입됐을 때, 사진가 김한용(87)이 광고포스터 촬영을 맡았다. 미국 본사에서는 포스터 스케치를 보내오면서 '이렇게 못 찍으면 일본에서 촬영해 오겠다'며 못 미더워했다. 보름을 작업했지만 스케치와 똑같은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스케치엔 콜라병에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는데, 아무리 해도 그렇게 찍을 수가 없었어요. 고민 끝에 장판용 니스에 병을 담갔다 꺼내서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만들었어요. 포스터 시안이 통과됐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한국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으니까요."

1959년 광고사진 스튜디오 '김한용 사진연구소'를 설립, 30여년간 광고사진을 찍어온 김한용은 '한국 광고사진계의 대부(代父)'로 불린다. 내년 3월 17일까지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김한용-광고사진과 소비자의 탄생'에 그가 1960~70년대에 찍은 사진 93점이 소개됐다.

김한용의 사진에서 1960~1970년대의 빈곤과 궁핍은 찾을 수 없다. 술, 양복, 치약, 탄산음료…. 당시 새롭게 등장한 각종 소비재와 함께 포즈를 취한 모델들은 풍족하고, 행복하고, 화려해 보인다. 김한용은 "가난한 시대였기 때문에 광고 사진에서는 '이렇게 살아봤으면' '이렇게 놀아봤으면' 하는 당시 사람들의 '꿈'을 표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풍요로운 이미지를 담지 않으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단적인 예가 1969년 백화양조주식회사 달력의 '2월' 사진. 영화배우 임성빈이 한 손에 사냥용 총을 들고 눈 쌓인 바위에 걸터앉아있고, 갓 잡은 꿩은 옆에 걸려 있고, 바닥의 모닥불에서는 꿩고기가 익어가는 장면이다. 요즘 눈으론 부자연스럽게도 보인다. "젊은 여자와 함께 사냥을 가서 술 한잔 하는 것이 당시 남자들의 로망이었어요."

신성일, 최무룡, 최은희, 김지미….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그의 카메라 앞에서 모델을 섰다. 인물 사진을 잘 찍는 비결은 최대한 인물의 단점을 제거하고, 장점을 살리는 것. 김한용은 "모델의 치아, 눈썹, 피부결, 표정까지 유심히 관찰한다. 광고 사진의 생명은 '표정의 아름다움'이라 최대한 밝은 표정을 담으려 노력하지만,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어쩔 수 없더라. 특히 김지미씨가 웃음에 서글픔이 배어 있어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고 했다. (02) 418-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