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약사·제약업체, 임기말 복지부 동시 협공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약사, 제약업체들로부터 동시 다발적인 '협공'을 당하고 있다.

보건의료계 이익단체들이 건강보험 재정 확충과 소비자들의 상비약(藥) 구입 편의 등을 위해 추진 중인 정부 정책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약사협회가 가정상비약의 수퍼마켓 판매에 반대해 약사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상정도 되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복지부가 추진하는 리베이트 근절을 위한 '보건의약단체 자정 선언'을 보이콧하겠다며 성명서까지 냈다. 제약협회는 내년 시행 예정인 건강보험 약가 일괄 인하 조치를 막기 위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며 21일 회원사를 대상으로 '약가 인하 법률 대응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권 말기로 가면서 레임덕현상이 보건의료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의협이 19일 내놓은 성명서는 의약품 처방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양측 모두를 처벌하게 돼 있는 리베이트 쌍벌제에 대해 "리베이트는 시장경제 하 어느 부문에서나 있는 거래의 한 형태이므로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의협 측은 20일 "리베이트 쌍벌제는 의사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보고 만든 법이어서 불쾌해하지 않는 의사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어떤 상거래든 많이 사면 싸게 살 수 있는 게 경제원리인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정해진 값만 강요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의협 측의 반발은 정부가 리베이트 쌍벌죄를 더욱 강화하기로 방침을 세우면서 더 격해지고 있다. 현행법은 리베이트를 주고받다가 적발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야 의사 면허를 취소하도록 돼 있지만, 복지부는 최근 한두 차례만 리베이트를 받아도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명단을 공개하는 방향으로 처벌 규정을 강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는 의·약계에 뿌려지는 약값 리베이트가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면서 리베이트를 뿌리 뽑으면 약값을 더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협회는 내년 시행 예정인 건강보험 약값 일괄 인하 조치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 조치는 리베이트 비용만큼 약값을 깎아 건강보험 재정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약값 지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제약협회 측은 "마케팅비용도 인정해주지 않고 기존 약값을 그렇게 한꺼번에 깎는 것은 제약업계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일"이라며 "생존을 위협받고 있으므로 법적 대응을 하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지난 10월 말 제약협회의 반발에 부딪혀 원래 인하하기로 했던 의약품 항목 수를 1만4410개에서 8776개로 줄여주며 달래기도 했지만 법적 공방까지 벌여야 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복지부는 이익단체들의 반발에 대해 표면적으로는 강경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의 반발에 대해 "리베이트는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는 대표적인 행위"라며 "리베이트 쌍벌제를 비판하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했다.

☞리베이트 쌍벌제

리베이트는 제약회사나 유통업체가 자기 회사 의약품을 처방해 주는 대가로 병·의원에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 쌍벌제는 이를 근절하기 위해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 모두 처벌하는 제도로 관련법이 지난해 5월 통과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