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원 여학생들이 보내온 러브레터 141통

"바깥 사람들은 저를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선생님은 처음으로 인정해주셨죠. 선생님께 그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아빠의 느낌'을 받았는데 떠나셔서 너무 슬퍼요."

남자 청소년만 모여 있는 고봉학교(옛 서울소년원)에 매주 여학생들이 쓴 편지가 온다. "보고 싶어요" "주말에 꼭 놀러 오세요" 같은 말로 가득한 편지는 정심학교(옛 안양소년원) 여학생들이 고봉학교 홍갑운(44) 선생님께 보낸 것이다.

정심학교 여학생들은 지난해 홍씨와 인연을 맺었다. 지난 16년간 보호처분 대상 학생들을 가르쳐 온 홍씨는 지난해 4월 정심학교로 발령받았다. 14년간 담임을 맡았지만 여학생들을 맡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들만 둘인 데다 그간 남자 아이들하고만 지내서 여학생들이 귀엽고 예쁘긴 한데 적응이 좀 어렵더라고요." 20일 오후 고봉학교에서 만난 홍씨는 지난해를 회상하며 엷게 웃음 지었다.

홍씨는 1995년 처음 소년원 선생님이 됐다. 대학을 중퇴하고 자장면집 배달, 막노동 등을 하며 방황하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자기 전철을 밟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제 과거 이야기를 해 주면서 '선생님은 20대에 방황을 했다. 무를 수 있다면 무르고 싶다. 하지만 너는 아직 10대 아니냐. 아직 너에겐 무한한 기회가 있다'고 타일렀죠."

홍씨의 진심 어린 말에 아이들은 어느새 마음 문을 열었다. 읽고 있던 책을 집어던질 정도로 난폭했던 아이들은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따랐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이라, 자기 얘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금세 알아서 후회하고 반성하지요." 아이들을 떠올리던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홍씨는 자기만의 특별한 교육 비법이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는 것. 정심학교에 들어와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일기장에 '개'라는 말을 밥 먹듯 쓰던 은정(가명·16)이는 "일기가 완전 개판이구나"라는 선생님의 댓글에 크게 웃은 뒤 일기장에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런 홍씨의 노력은 '러브레터'로 돌아왔다. 여학생들은 "선생님 덕분에 자신감, 열정이 생겼어요" "제가 헤어숍을 차리면 선생님은 평생 VIP 고객님이에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홍씨에게 건넸다. 편지 세례는 홍씨가 올해 1월 정심학교에서 고봉학교로 옮긴 뒤에도 계속됐다. 아직 학교에 있는 아이들, 퇴원한 아이들까지 예쁜 편지봉투에 우표를 붙여 편지를 보냈다. 아이들 부모들도 "아이가 아직까지도 선생님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이를 변화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편지를 보냈다. 이렇게 하나둘 받은 편지는 올해에만 60여통, 지난해 것까지 합치면 모두 141통이나 된다.

홍씨와 정심학교 여학생들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법무부는 오는 28일 홍씨에게 '2011년 올해의 교사상' 대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이렇게 헤어진 후에도 선생님과 아이들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시상 이유를 밝혔다. 홍씨는 "사실은 아이들이 보내준 편지가 나에게 가장 큰 상"이라며 수줍어했다.

"다른 소망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제 보물이고 편지가 제 보람이에요. 퇴직할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고, 수다 떨고, 공부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