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달러짜리 국산 셔츠와 150달러짜리 외제… 그 141달러 차이가 디자인, 내 잡지의 시작

그가 디자이너들에게 준 충고는 "더 시장 친화적이어야 한다"는 것. "시장에 나타나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디자이너들이 더 민감하게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작은 부띠끄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프로젝트에 자꾸 도전해야 한다"고도 했다. "얼마 전 '4D 라이브파크(가상현실을 이용한 체험형 놀이기구)'를 만든 '디스트릭트' 같은 회사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가상현실을 디자인한 다음에는 그걸로 보여줄 콘텐츠가 필요하죠. 크게 생각해야 여러 분야가 함께 발전할 수 있어요."

이 대표는 "지금 '디자인'지를 2만부 정도 발행한다"며 "외국 유명 디자인 잡지도 우리 부수만큼 내는 곳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35년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1년에 12회 이상을 내야 하는데 10회밖에 못 냈다는 이유로 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당시 정간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문화공보부, 계엄사령부, 사회정화위원회를 찾아다니며 설득해 복간시켰다"고 했다.

이 대표의 사무실 한쪽 벽에는 대형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다. 복잡하게 적힌 메모의 내용을 묻자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드는 작업을 구상한 것"이라며 "디자인이 산업과 함께 발전하려면 이런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아시아의 차(茶) 문화를 예로 들었다. "다구(茶具) 디자인, 도예, 찻집의 공간 디자인처럼 여러 분야를 차라는 키워드로 묶을 수 있어요. 차 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이런 분야에서 어떤 디자이너가 활약하는지 알아야죠. 한 줄기에 감자가 줄줄이 따라나오듯 여러 분야의 디자인이 함께 크는 거예요." 그는 "작은 나라인 한국이 살려면 정보 종주국이 돼야 한다"며 "한국이 디자이너 네트워크의 중심이 되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외국 대가들도 한국 디자이너 작품을 보면서 깜짝 놀라요. 그런데 정작 한국 디자이너들은 여전히 기업의 '하청업자'에 그칠 때가 많죠. 작품을 더 널리 알려서 디자이너가 기업의 동반자가 되도록 돕고 싶어요."

1976년 창간한 한국의 대표적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이 지난 10월 400호<사진>를 냈다. 이 잡지를 비롯해 '행복이 가득한 집' '맘&앙팡' 등 월간지 7종을 내는 '디자인하우스'도 올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 '디자인'지의 발행인으로 한국 디자인 역사의 기록자 역할을 해 온 이영혜(58) 디자인하우스 대표이사를 19일 서울 장충동 사옥에서 만났다.

홍익대 응용미술과 출신인 이 대표는 1977년 '디자인'지에 기자로 입사한 뒤 80년에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회사를 인수했다. "당시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보니 한국 기업이 수출한 셔츠는 9달러, 외국 유명 디자이너의 셔츠는 150달러더군요. 141달러의 차이는 결국 디자인이잖아요. 한국에도 그 가치에 주목하는 전문지 하나쯤 꼭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회사를 인수, 운영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 대표는 "그때에 비해 한국이 디자인 선진국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기업과의 관계에서 디자이너가 '을(乙)'인 현실을 고쳐야 한다"고 했다. "기업들은 보통 제품이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아요. 그만큼 디자이너가 판매량에 걸맞은 대가를 받기도 어렵죠." 그는 "디자이너가 로열티를 정률제(定率制)로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