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파수꾼', 가장 빛난 샛별

올 한 해 582편의 국내외 영화가 상영됐고, 연인원 1억5638만여명(26일 현재)의 관객이 영화관을 찾았다. 이들 영화 가운데는 옥(玉)도 있었고, 석(石)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10명에게 올해 영화계를 결산하는 의미에서 '올해의 발견' '과대 평가된 영화' '과소평가된 영화' 를 설문했다. 복수 응답도 인정했다.

◇2011년의 진주 '파수꾼'

가장 뛰어난 신인 등을 대상으로 선정한 '올해의 발견'에서 독립영화 '파수꾼'의 주연배우인 이제훈이 7표로 1위였다. 이 영화를 연출한 윤성현 감독이 4표로 그 뒤를 이었다. 이제훈은 전쟁블록버스터 '고지전'에서도 영민하고 신중하지만,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애늙은이 장교'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 "선과 악의 영역을 넘나드는 다면체 얼굴의 마력"(장병원), "복잡하게 중첩돼 있으며 극단적 변화 과정을 겪는 인물의 분위기와 감정을 놀라운 집중력과 다양한 표정으로 연기했다"(곽영진)는 적극적 동의가 있었고, 한 평론가는 그에게 '잘생긴 류승범'이란 별칭까지 붙였다. 윤성현 감독에 대해선 "스토리텔링의 '재주'가 아니라 '재능'을 지닌 믿음직한 이야기꾼의 탄생"(장병원), "학창시절이란 뻔한 내용에 대한 색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줬고 상업영화에 대한 가능성도 엿보이는 신인"(강유정)이란 평이 있었다.

'혜화, 동'의 주연 여배우 유다인은 "신인 배우로서의 발돋움"(정지욱), '돼지의 왕'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교실 안팎의 풍경을 통해 인생의 계급과 권력의 질서를 아주 리얼하고 허무하게 그려냈다"(곽영진)라는 평가를 받으며 각각 3표를 얻었다. 해외 영화제에서 16개의 상을 받은 '무산일기'의 박정범 감독도 2표의 지지를 받았다.

◇관객과 평단의 엇갈린 시선…'써니'

'과대평가된 영화'에는 흥행에 성공한 '써니'와 '트랜스포머3'가 각각 4표와 3표를 얻으며 1·2위를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 모두 업계 1위 투자·배급사인 CJ E&M 영화사업부문에서 배급했다.

강형철 감독의 '써니'는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았는데도 737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써니 신드롬'을 일으켰다. 평론가 강유정은 "당의정처럼 환상으로 현실을 가려주지만 그 유효기간이 짧다. 게다가 개봉 당시 경쟁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700만명이 넘는 관객 수로 이 영화를 평가할 순 없다"고 했다. 김형석도 "흥행이 영화의 얄팍함을 가려준다"고 했다. 779만명 관객을 동원하며 '상영관 독과점'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트랜스포머3'는 "형편없는 쿵쾅거림만으로도 어떻게 붐을 조장하며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최광희)라는 평을 받았다. 479만명이 본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은 "배우 김명민의 캐릭터 플레이 외에는 별 볼 일 없었던 범작. 함께 개봉한 졸작들이 흥행을 도운 사례"(최광희),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런스 멜릭 감독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궁극의 자뻑(스스로 뻐기는 것)"(장병원)이란 이유로 공동 3위에 올랐다.

◇관객이 외면한 수작들

'과소평가된 영화'는 이정향 감독이 9년만에 내놓은 신작 '오늘'이 3표로 1위였다. "살인과 용서의 문제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 촘촘한 내러티브, 세심한 비주얼이 강점을 보인다. 걸작도 아니고 재미와 감동이 큰 성질의 영화도 아니지만 지나치게 과소평가받았다"(곽영진), "다른 건 몰라도, 이 영화가 던지는 화두만큼은 곱씹고 새겨들어야 한다"(김형석)는 평이다.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 김태용 감독의 '만추', 송일곤 감독의 '오직 그대만',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등 기성 감독들의 작품이 관객이나 평단에게 제대로 받지 못한 점을 아쉬워 하는 의견도 나왔다.

명장면 ㅡ 최종병기 활의 절벽 투신… 완득이, 엄마를 품에 안다
명대사 ㅡ "바람은 극복해야 한다"… "세상엔… 대가가 따르지"

평론가들에게 올해 상영한 영화 중 '명장면'과 '명대사'를 꼽아달라고 했다.

명장면으로는 먼저 '최종병기 활' 가운데 '추격 시퀀스에서의 절벽 투신 장면'이 꼽혔다. "영화의 신뢰도를 급상승시키면서 흥행에도 큰 기여를 했다"(전찬일)는 평. '도가니'에서 "법정 공방 중 조성모의 '가시나무새' 노래가 흐르던 장면'(김형석)도 선정됐다. '완득이'에서 어머니가 완득이(유아인)에게 "한 번 안아봐도 돼요?"라고 묻는 장면은 "2011년 한국 사회에 일상화해버린 해체된 가정과 다문화 가정의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냈다"(곽영진)는 평을 받았다.

명대사로 평론가 최광희는 '최종병기 활'에서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남이(박해일)의 마지막 대사를 꼽았다. '더 브레이브'에서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의 독백 "세상에는 어떤 방식이든 대가가 따르지" '북촌방향'에서 여자와 헤어지면서 감독 성준(유준상)이 하는 말 "꼭 일기를 써라" 등도 포함됐다. 평론가 장병원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원숭이 시저(앤디 서키스)가 외친 첫 마디 "No!"를 추천했다. "그가 배운 첫 언어는 부정과 분노의 절규였다"는 게 이유. 일본 영화 '고백'의 몰입도 높은 잔인한 오프닝 시퀀스에서 여교사(마쓰 다카코)의 고백적 대사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습니다"(곽영진)도 인상적이었다.

●설문에 응해준 분들(가나다순)

강유정 곽영진 김형석 이동진 이상용 장병원 전찬일 정지욱 최광희 황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