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로 세상 바꾼 사람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은 송설체(松雪體:조맹부체)의 대가. 퇴계를 비롯한 도학자들은 제비꼬리처럼 아름다운 안평대군의 글씨를 가리켜 "너무 아름다워 취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비단에 유려한 행서체로 아름다운 봄의 정취를 읊은 '봉시(蜂詩)'가 이번 전시에 나왔다. 2001년 도난당한 국보 238호 '소원화개첩(小苑花開帖)'과 내용이 같다.

조선후기의 명필 추사는 "왕희지 글씨는 시대를 거치면서 변질됐으니, 차라리 왕희지 이전의 글씨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전시에 나온 예서 작품'唯愛圖書兼古器 且從文字入菩提'는 "오직 도서와 옛 그릇을 사랑하고, 문자를 따라 보리(깨달음, 궁극의 경지)에 들었다"는 뜻. (02) 580-1660

"그 획이 마치 삼만 근의 활을 당겨서 한 발에 가히 수많은 군사를 쓰러뜨릴 것만 같다."(조선후기 문신 성대중)

통일신라 시대의 명필(名筆) 김생(金生·711~791)은 후대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았다. 예서(隸書)·행서(行書)·초서(草書)에 두루 능했던 그는 '해동서성(海東書聖)'이라고 불렸고, 중국에서도 왕희지를 능가하는 명필로 칭송받았다.

김생 탄신 13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筆神, 김생에서 추사까지'가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내년 3월 4일까지 열린다. 김생 글씨 2500자를 집자(集字)한 '태자사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太子寺朗空大師白月栖雲塔碑)' 탁본을 필두로 고려의 탄연(坦然·1070~1159), 조선의 안평대군(安平大君·1418 ~1453)과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 작품 등 한국 서예사의 대표 걸작 30여점이 나온다. 이동국 예술의전당 수석 큐레이터는 "왕희지의 영향을 받되 둥글고 납작하고 안정적인 특유의 서체를 고안해 우리 전통 서예의 문을 연 김생부터, 우리 서예의 '종결자' 추사까지 필신(筆神)들의 작품을 총망라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