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경영 하기엔 불확실성 커… 리스크 관리에 치중"

1년 전 이맘때쯤 4대 금융그룹 수장들은 새해를 앞두고 자신감에 넘쳤다. 2010년에 부지런히 구조조정과 대손충당금 적립 등 체질개선을 통해 공격경영을 위한 체력을 비축했고, 글로벌 경기도 회복세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4대 금융그룹 회장들은 입을 모아 2011년을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고 '글로벌 경영'과 '인수·합병(M&A)'을 화두로 내세웠다.

하지만 올 연말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밖으로는 유럽위기가 이어지고 있고, 안으로는 총선과 대선 등 굵직한 선거가 기다리고 있어 불확실성이 올해에 비해 훨씬 커졌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변화 탓에 4대 금융그룹 수장들은 새해엔 공격보다는 '수성(守城)'에 초점을 두고 있다.

◇KB 어윤대 회장

KB금융 어윤대 회장은 은행 편중 수익 구조를 바꾸기 위해 올해 비(非)은행 금융회사 인수에 공을 들였다. 올해 초 5%에 불과한 비은행권 계열사의 수익 비중을 2013년까지 30%까지 올리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자사주 매각을 통해 1조8000억원의 실탄도 마련했다. 하지만 KB카드 분사와 제일저축은행 인수를 제외하고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내년 재도전 의지를 불태울 법도 하지만, 어 회장은 노선을 바꿨다. 외형 확장보다 내실 다지기가 제1 경영 목표다. 어 회장은 "내년엔 성급한 대규모 투자보다는 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다. 어 회장에겐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 바람에 대한 고민도 있다. 강정원 회장 내정자가 정치 바람에 밀려 사퇴하는 등 어두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어 회장은 "정치적 이슈로 인해 경영에 영향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이팔성 회장

우리금융 이팔성 회장에게는 내년에도 우리금융 민영화 문제가 최대 숙제로 남아있다. 금융계 안팎에서는 "이미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지만, 이 회장은 여전히 민영화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금융 민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시장이나 정부 당국도 공감하고 있다"며 "정치적 일정과 상관없이 시장원리에 따라 내년에 민영화에 진전이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또 다른 목표였던 비은행부문 역량강화는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이 많다. 카드 부문 분사는 공시까지 했다가 연기됐고, 최근에는 1조5000억원 규모의 증자설이 흘러나와 혼란을 야기했다. 이 때문에 사업확장에 욕심을 내는 이 회장과 이를 통제하려는 금융당국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래도 올해 초 목표로 세웠던 순이익 1조8000억원을 초과 달성하고, 총자산 기준으로 KB를 제치고 국내 최대 은행에 오른 것은 성과였다.

◇신한 한동우 회장

신한금융 한동우 회장은 신한사태로 불거진 내부 조직 갈등을 봉합하고 훼손된 이미지를 회복하는 중책을 맡고 지난 3월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취임 전부터 사내외 인사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조직을 추스르고 서민과 중소기업을 돕는 '따뜻한 금융'을 선언하는 등의 노력으로 내분 수습과 신뢰 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올해 당기순이익도 당초 목표치인 2조3000억원을 훌쩍 뛰어넘어 3조원 이상을 기록할 전망이다. 초기에는 카리스마 넘치는 라응찬 전 회장에 비해 무색무취한 것 아니냐는 평도 있었지만, 얼마 전 서진원 행장 연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조금씩 자기 목소리도 내고 있다.

새해를 맞는 한 회장의 최대 고민은 유럽 재정위기와 국내 경기침체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다. 한 회장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경영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한 회장의 또 다른 새해 역점 사업은 새로 인수한 저축은행과 신한은행 간의 시너지효과 증대다. 한 회장은 "은행과 연계한 시너지 영업체계를 구축해 안정적인 영업기반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하나 김승유 회장

올해 외환은행 인수로 승부사로서의 체면을 회복한 하나금융 김승유 회장 앞에는 두 은행을 어떻게 화학적으로 결합시키느냐는 숙제가 놓여 있다. 서로 다른 두 은행이 각각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투 뱅크(two bank) 체제로 가면서도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것이라는 관측이 금융계 안팎에 많다. 하나금융 인수에 거세게 반발하는 외환은행 노조의 불만을 어떻게 잠재우느냐도 숙제다. 김 회장은 "임직원 인사평가 때 시너지 효과에 기여한 부분에 가점을 주는 등 다양한 제도적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은 올해 초 글로벌 금융사로의 도약도 화두로 내걸었다. 하지만 올해 해외지점을 한 군데도 개설하지 못하는 등 목표에 한참 못 미쳤다. 김 회장은 "해외 나가는 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면서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해외시장을 공략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내년 만 69세가 되는 김 회장에게 후계구도 준비도 숙제거리다. 내년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 회장은 연임이 유력시된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 정관에 따라 70세까지만 회장직을 수행할 수 있어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포스트 김승유'에 대한 고민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