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이 오히려 더 좋다, 난 착한배우 아니니까"

'피와 뼈'의 최양일 감독은 배우 오다기리 조(35·小田切讓)에 대해 "그의 아름다움은 연기가 끝난 직후 2~3초에 있다. 이 세상이 아닌 곳에 있는 듯한 표정,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 홍조를 띤 볼은 매우 매력적이다"라고 했다. 25일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 홍보차 한국에 온 오다기리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오다기리는 말을 하다 멈추거나, 할 말을 생각할 때 가만가만 시선을 돌렸다. 최 감독이 말한 '세상이 아닌 곳에 있는 듯한 표정'이 무엇인지 확인한 순간이었다.

오카야마(岡山)현 출신으로 2000년 TV드라마로 데뷔한 오다기리는 이누도 잇신 감독의 '메종 드 히미코'(2006)에 출연하면서 한국에서 인기를 얻었다. 특히 여성 관객들은 그의 삶에서 한 발짝 물러난 듯한 표정과 가느다란 사지(四脂)를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듯한 동작에 낮은 탄식을 뱉었다. 이후 드라마 '시효경찰'(2006)에서는 파마머리를 하고 뿔테안경을 쓴 채 우스꽝스런 연기를 보여줬고, 영화 '도쿄 타워'(2007)에선 병에 걸린 노모와 애틋한 정을 나누는 아들 역할로 관객의 눈물을 쏙 뺐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 '이 감독밖에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에 출연합니다. 영화의 개성이나 예술성도 중요합니다."

그는 '마이웨이'에 대해선 "내가 지향하는 영화는 아니고, 즐겨 보는 류(類)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마이웨이' 시나리오를 보곤 지옥 같은 촬영현장이 떠올랐어요. 인생에서 지옥을 언제 경험하겠어요. 원래 한국을 좋아하는데 이곳에서 8~9개월간 머물 수 있다는 점도 끌렸죠."

오다기리는 배우 이나영과 함께 김기덕 감독의 '비몽'(2008)에도 출연했다. 김기덕과 강제규는 상업성 등의 면에서 한국 영화계의 양극단에 있는 감독들이다. "한국 영화와 배우들에 대해 평해달라"고 하자 오다기리는 "'비몽'도, '마이웨이'도 보편적인 한국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경험만으로 한국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긴 어렵다"고 했다. "한국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김기덕·강제규 감독, 장동건 등과 같은 사람들을 알게 된 겁니다. 앞으로 한국에 올 때마다 연락할 거예요."

오다기리는 '마이웨이' 초반부에서 일본군에 징병 된 한국인들을 괴롭히는 악역을 연기한다. "일본인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역할에 부담을 느끼지 않느냐"고 묻자 "배우는 그런 거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으로 보일 필요가 있나요? 오히려 나쁘게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착한 이미지가 굳어지면 조금만 실수해도 나쁜 점이 눈에 띄잖아요. 난 실제로도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런 이미지 생기는 거 원하지도 않습니다."

오다기리 조하면, 사람들은 '자유분방한 영혼'을 떠올린다. 사회의 가치에 반기를 드는 역할을 주로 맡았고, 평소에도 난해한 옷차림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제 가치관을 따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소속사에서 혼난 적이 많아요. 어제도 일본에서 기자회견 할 때 껌 씹었다고 매니저한테 엄청 혼났어요. 배우란 많은 사람한테 보여지는 직업이고, (사람들이) 절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걸 조율하려는 소속사와 매니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요."

오다기리는 "어렸을 때부터 예술로 자기표현을 하고 싶어서 사진, 음악, 그림 등을 다 해봤는데 다 별로 재능이 없었다"며 "그러다 이 모든 걸 다 녹여낼 수 있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왜 배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언제까지 배우를 할지 자신할 수 없지만 재미가 없으면 그만둘 겁니다. 재미가 없는데도 계속한다면 그건 관객에게 실례입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그는 문득 "요즘은 도자기 만드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집에 있는 식기를 보면 아주 단순한 것밖에 없어요. 실용적이니까요. 제가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조금의 개성 같은 걸 불어넣고 싶어요.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도 식기처럼 심플한 게 대중에게 사랑받죠. 하지만 제가 그런 작품들에 참여하면서 (작품의) 뭔가를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예술적인, 상상 이상의 것이 나왔으면 해요, 그게 한순간이라고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