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모던 조선'] [90] "조선의 풍긔로 남녀공학은 무례" 여학생들 동맹휴학

"사천년 동안 규문(閨門)에 가쳐 잇고 몇십년 전까지는 장옷을 쓰고 남자에게 얼골을 감추고, 길에서 맨얼골로 남자를 맛나면 비켜서고 외면하든 조선 녀자계도 이제는 남자와 함께 학교를 다니게 되엿다…."

1925년 4월 8일자 조선일보 3면 톱기사는 자못 흥분된 어조로 교육계 빅 뉴스를 전했다. '조선 최초의 남녀공학'이 실시된다는 보도였다. 경성시내 송현동 보성(普成)전문학교 안에 둔 조선전수학원(朝鮮專修學院)의 사회과와 법과가 처음으로 남녀공학을 결정해 이미 수명의 지원서가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이때의 남녀공학이 실제로 사상 최초인지는 확인이 필요할 듯하지만, 당시 신문들이 일제히 보도한 것을 보면 '사회적 관심을 모은 파격적 남녀공학 도입'으로는 처음이었던 듯하다. 조선전수학원이 한창 이성에 민감한 고교생 또래들을 가르치는 기관이기에 당시로써 놀라움은 컸다. 학교측은 "여자 자신이 원해" 남녀공학을 도입했다면서 "공학을 주창하는 편은 녀성동우회, 즉 적색(赤色·사회주의적 색채)을 띄운 여자가 만타"고 밝혔다. 남자만의 학교를 '성차별의 공장'으로 비판하는 진보적 목소리를 수용한 것이다.(1925년 4월 8일자)

1920년대 초에만 해도 이 땅에서는 "남녀공학은 시기상조"라는 비판론이 우세한 듯했다. 일본 교육계의 '남녀공학론' 도입 움직임은 '외래 사상만 너무 숭상한 것'이라고 지상에서 질타했다.(1921년 7월 16일자) 전북 부안군의 어느 여자 공립보통학교는 남녀공학을 도입하려고 했다가, 40여명의 여학생들이 "현재 조선의 풍긔로는 남녀가 공학하기에 너무나 무례하다"며 동맹휴학을 하며 거세게 집단 항의하는 사태를 만나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1924년 11월 27일자)

그러나 1925년을 기점으로 남녀 공학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다. 경성에 이어 대구의 사립 법전학원(法專學院)도 법과와 상과에 남녀공학을 도입했다.(1927년 12월 3일자) "학원내 로맨스란 취미와 장래 희망이 닮은 사람끼리 이뤄질 가능성이 많으므로, 남녀 공학이야말로 결혼의 왕도(王道)"라고 했다는 1930년대 미국 학자의 이론은 실시간으로 국내에 전해졌다.

1924년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이 여학생 입학을 허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론도 일찌감치 제기됐다. 1926년 조선일보 가정면에 3일간 톱 기사로 연재된 '남녀공학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글은 중학교 남녀공학에 대해서는 "혈기 왕성한 젊은 남녀를…공학(共學)을 시키기에는 아즉도 우리들의 재래의 생활이 그만큼 리지적(理智的)이 되지 못하였다"고 한발 물러섰으나, 경성제국대학의 여학생 입학 불허 결정은 변경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80여년전 글은 "소위 녀성다운 녀성의 행동을 취하고는 도뎌히 녀성 자신의 손으로 사회 생활에 잇서서 모든 기회 균등을 엇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여성들에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목청을 높였다.(1926년 6월 3일자~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