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의 우등생 펀드가 올해는 지진아 펀드?

올 초 은행 상담창구 직원의 권유로 A사의 압축펀드(10~20개 주식 종목에 집중투자하는 펀드)에 가입했던 주부 이모(39)씨는 최근 수익률을 확인해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작년 성과가 좋아서 지금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1등 펀드'라는 말에 솔깃해서 목돈을 넣었는데, 막상 1년쯤 지나 뚜껑을 열어보니 수익률이 신통치 않은 '지진아 펀드'였기 때문이다. 이씨는 "당시 그 펀드가 가장 잘나간다는 말에 가입했는데 운 나쁘게 꼭지를 잡았던 것 같다"며 후회했다.

이씨처럼 반짝이는 성과에 끌려 선택했던 펀드가 연말에 다시 살펴보면 성과가 부진해서 실망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지난 2007년부터 올해까지 펀드 농사 결과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8일 본지가 펀드평가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최근 5년간 국내 주식형 펀드 554개의 수익률을 살펴본 결과, 상위 30% 이내의 양호한 수익률을 냈던 펀드가 그 다음해에도 다시 상위 30% 이내에 포함될 확률은 평균 30%에 불과했다. 나머지 70%에 해당되는 투자자들은 우등생이었던 펀드가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리는 바람에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보았다는 얘기다. 기호삼 동부자산운용 본부장은 "한국 증시는 워낙 변동성이 크다 보니 1등이던 펀드가 다음해엔 꼴찌로 추락하기도 한다"면서 "단기 수익률만 볼 것이 아니라, 최근 3~5년간 꾸준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해왔던 펀드에 가입해야 손해 볼 확률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상위 30% 펀드 생존율, 고작 30%

현재 국내에 판매되고 있는 주식형 펀드는 1200여개. 이들 펀드는 똑같이 국내 증시에 투자하면서도 실적은 천차만별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최고 수익률과 최저 수익률 차이를 살펴보면, 2009년엔 78.3%포인트였고 지난해엔 46.1%포인트였다. 올해도 1등 펀드와 꼴찌 펀드 간의 수익률 차이가 43%포인트가 넘는다. 그만큼 펀드를 잘 골라야 투자 실패를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현재 수익률이 1등인 펀드가 앞으로도 계속 선전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데에 있다. 지난해 상위 1% 펀드로 자리매김하면서 시중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JP모건의 코리아트러스트펀드는 올해 수익률이 추락해 하위 20%권을 맴돌고 있다. 반면 지난해 수익률이 바닥이었던 동양운용의 FIRST스타우량상장지수펀드는 올해 수익률이 상위 6%로 선두권에 진입했다. 지난 5년간 매년 수익률이 상위 30% 이내에 포함되면서 꾸준한 수익률을 낸 펀드는 GB원스텝밸류펀드, KB퇴직연금펀드, 교보악사파워인덱스펀드, 동양모아드림인덱스펀드 등 4개에 불과했다.

◇1등 말고 '꾸준한 펀드' 투자를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형 펀드가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수익률 부침(浮沈)이 훨씬 심해 '톱니바퀴 시장 같다'고 평한다. 실제로 과거 5년간 운용사별 평균 수익률을 보면, 5년 내내 평균 수익률 상위 30% 내에 든 자산운용사는 한 군데도 없었다. 5년간 상위 30% 이내에 4회 이상 진입한 곳도 알리안츠·동부자산운용 등 2개사에 그쳤다. 한 대형 운용사 간부는 "우리나라 펀드 판매사들은 무조건 1등 펀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면서 "펀드매니저 입장에선 상품의 특성이나 운용철학에 상관없이 최고 성과를 내기 위해 무모한 베팅을 하다 보니 1등 펀드가 다음해 꼴찌로 추락하는 현상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펀드 투자에 왕도(王道)는 없지만, 실패확률을 낮추려면 1년치 성적에 현혹되지 말고, 해당 운용사의 3~5년 수익률을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연주 에프앤가이드 연구원은 "국민연금을 포함한 대부분의 연기금·보험사들은 운용사를 고를 때 장기성과와 성과지속성에 관심을 갖는다"면서 "개인들도 최근 1년 성과도 좋으면서 과거 5년간 수익률 순위에 차이가 별로 없어 성과지속성이 있는 곳을 고르면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