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하듯 연기 시작… 배우라는 건, 내 직업

그가 환하게 웃음 지으며 첫 인사를 건네는 순간, 그가 왜 한결같이 '밝고 착한' 역할을 맡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배우 이민정(29)은 '꽃보다 남자' '그대 웃어요' 같은 드라마, '시라노:연애조작단' 등의 영화에서 활달하고도 순수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내년 1월 5일 개봉하는 권칠인 감독의 '원더풀 라디오'에서도 그는 귀엽고 당찬 데다 남을 배려하는 속 깊은 마음씨까지 갖춘 연예인으로 나온다.

2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이민정을 만났다. 그는 인터뷰를 하면서 "깔깔깔" "하하하"에서부터 "허허허"까지 다양한 웃음소리를 구사했다. 그는 "개봉 전에는 남들처럼 긴장해 잠도 못 자다가도 개봉하면 바로 두 발 뻗고 잘 자는 낙천적인 성격이다"라고 했다.

이민정은 '원더풀 라디오'에서 한때 잘나가던 아이돌 그룹 리더였지만 청취율 저조로 프로그램이 존폐의 기로에 선 라디오 DJ 진아를 맡았다. 영화는 코믹한 분위기지만 청취자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관객들을 울리려고도 한다. 이민정은 "손예진씨와 함께 시사회에서 영화를 봤는데 '자기가 출연한 영화 보고 우는 배우'라고 놀림당했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의 청취자 사연을 들으면서 울고 웃기도 하고,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녹음도 했어요. 라디오에 대한 동경 때문에 이 영화에 끌렸어요."

진아는 한때 잘나갔지만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스타다. "먼 훗날 지금의 자리에서 내려가게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퇴물이 되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으면 섭섭하겠지만, 연예인이 아닌 채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대학(성균관대 연기예술학부)을 졸업한 뒤 스물다섯살 때쯤에 데뷔했다. 연예인으로 살아온 기간이 짧기 때문에 내 위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는 답이 돌아왔다. "친구들이 대학졸업 후 취직을 하듯 나도 연기를 했기 때문에 배우라는 걸 직업으로 바라봅니다. 나이가 들면 일로 얻는 행복은 줄어도 개인적인 행복이 커질 수도 있잖아요."

이민정은 '세상의 모든 사람은 나를 안 믿어도 너는 나를 믿어줄 줄 알았다'는 영화 속 대사가 "가슴에 꽂혔다"고 했다. 진아가 다른 가수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중에게 비난을 받을 때쯤 나온 대사다. 그는 "악플이나 악의적인 기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연예인을 많이 봐왔다"며 "대중은 내가 일하는 모습만을 보기 때문에 내 진실된 모습을 다 봐줄 수 없다"고 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끝까지 제 곁에 있어준다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대사가 와 닿았는데, 편집 때 잘렸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