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에 자유를 주고… '막소설' 썼죠"

"존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마흔 되기 전에 썼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 작가의 첫 작품이 최고잖아요. 데뷔작에는 온 정성을 다 들이는 법이니까. 또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제외하면 죽기 전 마지막 작품이 최고인 경우도 못 봤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면서 글이 나왔습니다."

번역가이자 소설가인 안정효(70)씨가 10년 만에 장편 역사소설 '솔섬'(전 3권·나남 출간)을 펴냈다. 200자 원고지 6000장에 해당하는 많은 분량에 36컷에 해당하는 삽화도 직접 그렸다. 그는 "완전히 해방된 상태에서 쓴 소설"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더 좋은 작품 써보겠다고 스스로를 학대하니까 오히려 글이 써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작가가 이 소설에 붙인 표현은 '막소설'. '막'이라는 접두사는 '막말'이라는 뜻이 아니라 "내 상상력에 자유를 주고 싶다는 의미"라고 했다. 실제로 '솔섬'은 판타지소설, 역사소설, 정치풍자소설, 세태소설 등 시선에 따라 다양한 분류가 가능하다.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장소로 낙점받은 서해 바다의 가상의 섬 '솔섬'을 배경으로 철새 정치인, 기업인, 투기꾼, 조직폭력배, 종교인의 세태를 분방하게 묘사하고 비판한다. 흘러가는 시간도 시계 반대 방향이다. 2007년에 시작한 소설은 194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황송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던 국가는 변웅호 군사 정부와 독고섭 민주 정부를 거쳐 솔섬의 바닷속 침몰로 마무리한다.

작가는 "아무래도 정치와 역사를 다루다 보니 좀 무거워질 것 같아서 짐짓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했다.

현실정치와의 연관성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한 채 "내 생각에는 국민이 정치권을 훈련시키는 중이라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했다. "노무현 정권을 교체한 것도, MB 정권을 비판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시민"이라면서 "시민들이 정치인보다 낫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한국 정치는 예방주사를 맞는 중이지만, 결국은 지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낙관적 해석을 했다.

안씨는 코리아타임스 기자와 문화부장을 지내고 1975년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시작으로 약 150권의 책을 번역했다. 소설로는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미늘' 등이 있다. 독문학을 전공한 아내와의 사이에 쌍둥이 딸을 뒀는데, 영어만 통·번역이 가능한 자신과 달리 큰딸은 13개 국어, 작은딸은 히브리어·히타이트어 포함 8개 국어를 한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UN본부라고 부른다"며 껄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