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린 영화 다시 상영… 그 뒤에 멀티플렉스 횡포 있다

영화관에서 상영되다 막을 내렸던 영화가 다시 상영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29일부터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와 CGV에서 연장 상영에 들어간 영화 '량강도 아이들'(감독 김성훈·정성산)이다. 이 영화는 앞서 지난달 17일 개봉해 전국 30여개 극장에서 상영되다 1~2주 만에 대부분 대형 영화관(멀티플렉스)에서 상영 종료됐었다. 왜 이런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을까.

경위를 알아보니 멀티플렉스가 좌지우지한 불공정한 상영 계약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량강도 아이들'은 개봉 첫날 스크린 수가 31개였지만 일부 멀티플렉스에서 교차 상영(한 스크린에 여러 영화를 번갈아가며 트는 것)되면서 하루 1~2차례만 상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제작·배급사인 시네마 샘의 김동현 대표는 "멀티플렉스들이 어느 상영관에서 트는지 개봉 3일 전에야 알려줘 포스터나 전단도 제대로 비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실태를 '공개고발'하고 영화진흥위원회에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아달라"며 신고했다. 이러자 영진위 공정경쟁환경조성 특별위원회는 실태 조사를 거쳐 지난 15일 멀티플렉스들에 교차 상영, 선전물 게시 문제 등에 대한 '시정 권고' 조치를 내렸고, 멀티플렉스들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량강도 아이들'을 다시 상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문제는 '량강도 아이들' 사례가 국내 대부분 중소영화사들이 겪고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견 영화제작자는 "개봉관을 많이 잡으면 흥행이 따라오는 현실에선 멀티플렉스가 '갑(甲)'일 수밖에 없다"며 "이번에 '량강도 아이들'이 제기한 문제는 모든 중소 영화사가 겪는 문제"라고 했다.

영화계에서 가장 대표적으로 꼽고 있는 악습(惡習)은 이른바 '공짜표' 관행이다. 대부분 멀티플렉스들은 마케팅 차원에서 회원 고객 등을 대상으로 '공짜표'를 발행하고 있다. '공짜표'는 배급사와 영화관이 절반씩 가지도록 돼 있는 티켓 수입을 포기하는 것이어서 엄밀히 따지면 영화사 측이 동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들은 상영관 배정 등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 계약서에 '총매출액의 10% 범위까지 임의로 공짜표를 발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끼워넣어 도장을 찍으라고 하고 있고, 영화제작·배급사 측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구조"(A영화사 관계자)라는 것이다. 최현용 영화제작자협회 사무국장은 "멀티플렉스들은 공짜표를 얼마나 발행했고 그중 얼마가 실제 사용됐는지 공개도 하지 않고 있다"며 "전형적인 불공정 거래"라고 했다. 영화인들은 "2008년 공정거래위가 시정명령을 내렸고, 올해 초에는 23개 영화제작사가 32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도 멀티플렉스 측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최근 보편화하고 있는 디지털 상영관의 영사기 문제도 영화사 측에서는 '불공정 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사기는 영화관 시설인데 영화 제작·배급사 측이 상영할 때마다 비용을 부담한다"(B영화사 간부)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 멀티플렉스 측은 "솔직히 '량강도 아이들'은 흥행성이 떨어지는 영화인데도 어렵게 만든 점을 배려해 스크린에 걸어준 부분이 있다"며 "무조건 불공정이라며 멀티플렉스의 경영 활동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