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노래하네

추운 겨울 따뜻한 방 안에 있는 듯한 나른함이 묻어나는 단조로운 기타 소리, 속삭이는 듯한 음성, 시(詩)를 연상시키는 듯한 감수성 짙은 가사.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36·본명 조윤석)만의 세 가지 특징이다. 그가 최근 5집 앨범 '아름다운 날들'을 냈다.

22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루시드폴은 "이번 앨범에 그동안 지켜왔던 나만의 고유한 색채에다 두 가지 특징을 더했다"고 했다. "일상에서 비롯된 깊은 우울감과 라틴 음악"이다.

먼저 일상. "TV, 라디오 활동에 치여 작곡·작사의 감을 잃었고, 사랑하던 연인도 잃었다"는 그는 "슬럼프에 빠져 뜻대로 곡이 쓰이지 않았다"고 했다. "음악에 올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 어쩐지 나태해지고 현재에 안주하는 것 같은 자괴감이 저를 괴롭혔죠. 이별 얘긴 안 할래요. 누구나 겪는 일이니까. 어찌 됐든 이 모든 것이 뒤섞여 굉장히 힘들었죠. 한 달 반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며칠, 몇 시인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자신을 몰아붙여 50여일 만에 8곡을 만들었고 이미 만들어놓았던 3곡을 더해 2년 만에 새 앨범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단다.

두 번째. '그리고 눈이 내린다'에 녹여낸 삼바, '어부가'에 얹은 쿠바 사운드 등 라틴 음악을 한국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하는 예술가로서의 욕심이다. "한때는 직접 브라질에 가서 음반을 제작해 오겠다며 포르투갈어를 배우기까지 했었다"고 했다. "'우리말은 라틴음악에 안 어울린다'하시는데, 저는 확신이 있어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라틴 음악을 만들겠다고 다짐했죠. '하늘은 밝아올 테고/거리는 분주할 테고'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가사를 쓰고, 반데이루, 탐보린, 탄탄 등 정통 라틴 악기 소리를 담았어요."

감각적인 가사와 애잔한 멜로디가 바탕이 됐음은 물론이다. '바람 거세게 불어와도 자유롭게 가볍게 걸어가는 너'(외줄타기) '찬란하게 빛났던 우리 아름답게 저물던 그 밤'(그 밤) '이제는 좋은 일들만 꼭 있을 것 같아… 밝아오는 저 빛'(노래의 불빛) 등 시적인 노랫말이 여전하다. "'빛'은 저에게 희망적인 계시나 용기의 이미지로 다가와요. 굉장히 사소한 건데, 길을 걷다 태양이 강하게 나를 비추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요. 가끔은 '진부한 클리셰(cliche)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일부러 피하려고도 하지만, 시쳇말로 저에게 꽂히는 노랫말인 거죠."

"노트와 펜을 놓고 마루에 앉아 기타를 뜯다가, 음 소거시켜놓은 TV를 보다가, 집 안을 왔다갔다 거닐기를 반복하다가 곡을 만든다"는 그에게 작곡은 '낚시'라고 했다. "제가 음악 천재가 아니에요. 잠잠한 강에 온종일 낚싯대를 드리우듯 기다리다 음악이라는 물고기를 낚는 거죠. 하하."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거만하거나 진지하기보단 엉뚱하고 유쾌했다. 본래 성격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대뜸 별자리 얘기를 꺼냈다. "제가 물고기자리인데요, 물고기자리 사람들이 그렇대요. 감성적이면서도 터프하고, 우울한 듯하면서도 밝다고. 그래서 그런가 봐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