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집착한다… 그 피부까지

스페인 출신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신작 '내가 사는 피부'의 영어 원제(原題)는 '더 스킨 아이 리브 인(The skin I live in)'이다. 풀면 '내가 피부 속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다. '피부'와 '나'는 별개의 존재라는 얘기로도 들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 베라(엘레나 아나야)에겐 피부가 별개의 존재다. 성형외과 의사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납치당한 그는 대저택에 갇혀 산다. 화재로 아내를 잃은 로버트가 베라를 대상으로 특수 피부 개발 연구를 하기 때문에 베라는 피부와 같은 색의 전신 수영복을 입고 생활한다. 이 대저택에 침입자가 들어오면서 로버트가 베라를 왜 납치 했는지 밝혀지고, 이 둘의 관계도 변화한다.

영화의 원작은 프랑스 소설가 티에리 종케의 '독거미'다. 감금당한 여자와 그를 사랑하게 된 남자라는 구도를 빌려왔을 뿐 영화는 원작과 꽤나 다르다. 원작에서 두드러졌던 창조물과 피조물 간의 뒤틀린 관계나 복수의 테마는 영화에서 많이 희석됐고, 다른 인물과 사건까지 넣어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꼬았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게을러진 걸까. 출생의 비밀과 폭력, 치정, 성정체성 등 자극적인 소재를 무심하게 뭉쳐내는 재주나, 화면의 화려하면서도 바랜듯한 원색은 감독이 예전 작품에서도 보여준 것이다. 그의 영화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더 이상 강렬하거나 충격적이진 않다.

변하지 않아서 다행인 게 있다면 여자에 대한 그의 시선이다. '키카'나 '내 어머니의 모든 것'과 같은 초기작에서부터 이번 작품까지 그는 여자를 헤쳐본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내가 사는 피부'도 여자와 그를 둘러싼 피부, 더 나아가서 '껍데기'에 관한 것이다. 로버트의 아내는 화재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화상으로 흉해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 창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베라도 실험대상이 되기 전 자신의 본모습을 본 후 로버트의 대저택에서 뛰쳐나온다. 알모도바르 감독에겐 남자나 남성성이 오히려 폭력과 억압에 가깝다. 이번 영화에서도 로버트는 여자를 소유하고, 집착하며 정복하는 인물이다.

감시카메라로 베라를 감시하는 로버트의 시선은 관음에 가깝지만 알모도바르 감독은 여자를 관찰하고, 탐구한다. 그는 진정으로 여자를 알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감독이다. 베라가 방에 갇혀 있을 때 만든 조형물이 여성성과 성 이데올로기를 함축한 작품을 만든 프랑스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아의 그것과 비슷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 이것이 포인트

#장면
베라(엘레나 아나야)가 방에서 혼자 요가하는 모습을 로버트(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감시카메라로 감시한다. 자신의 피조물과 사랑에 빠지는 피그말리온의 모습과 흡사하다.

#대사
“그녀를 믿지마, 죽여야 해! 아니면 우리를 죽일거야… 분명히”(로버트의 가정부가 베라를 가리키며 하는 말. 그의 말대로 피그말리온의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이 된다.)

#이런 분들 보세요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듯 영화를 보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