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하는 연기자는 그냥 엔터테이너

    입력 : 2012.01.04 03:06

    TV조선 '한반도'에서 대통령으로 출연하는 이순재

    TV조선 블록버스터 드라마‘한반도’에서 한국 대통령을 연기하게 된 배우 이순재가 인터뷰 중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그는“후배 연기자들이 좀 더 사명감을 갖고 치열하게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이순재(77)는 이름 석 자 외에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없는 배우다. 안정된 연기력으로 50여년 기복 없이 활동하며 '사랑이 뭐길래(1991~1992)' '목욕탕집 남자들(1995~1996)' 등 인기 주말극에서 엄하지만 속 깊은 아버지역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노년에 들어서도 '야동순재'(2007년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김만석'(2011년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으로 끊임없이 변신하며 '연기에 정년은 없다'는 것을 보여온 그가 이번엔 대한민국을 이끄는 지도자로 변신한다. 다음 달 방송되는 TV조선의 블록버스터 '한반도'에서 주인공인 서명준(황정민)의 전임 대통령 강대현 역을 맡은 것. 평화 통일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명준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역할이다.

    최근 서울 청담동 카페에서 만난 그는 "연출과 작가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고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필요하다잖아요. 사명감이지. 과거에는 대통령을 연기한다는 건 꿈도 못 꿨어요. 70년대만 하더라도 맘 놓고 다룰 수 있는 계층이라곤 거지나 최하층 빈민이었어요. 지금은 좋아졌죠. (드라마 제작진이) 소신을 갖고 올바르게 판단하면 못 다룰 배역이 없잖아요."

    '한반도'는 대체에너지 개발 과정에서 남북이 대립과 화해를 거듭하다 통일을 이뤄나간다는 가상의 이야기.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남북 축구경기를 관람하는 장면 등 상당한 분량을 찍은 그는 '한반도' 주연(황정민·김정은)들에겐 후한 점수를 줬다. "(김)정은이랑 원래 친해 종종 통화해요. 그런데 이번 극에선 마주치는 장면이 없어 아쉬워. (황)정민군은 죽을 듯이 울부짖는 모습을 잘 연기해도 본인이 성에 안 찬다며 반복하더라고. 대사만 안 틀리면 잘했다고 착각하는 배우들이랑은 차원이 달라."

    이순재는 최근 들어 잇따라 후배들의 잘못과 부족한 부분을 공개적으로 따끔하게 지적해 매스컴을 탔다. 지난해 7월에는 한류스타 장근석이 '베토벤 바이러스' 촬영 때 지각했던 일을 지적했고, '스파이 명월'의 한예슬이 무리한 촬영스케줄을 문제 삼으며 펑크를 내자 "배우는 어떤 경우라도 현장을 떠날 수 없다"고 꾸짖었다. 아이돌 연기자들의 연기 실력도 문제 삼았다.

    이순재는 이에 대해 "기본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젊은 후배들 나이일 때 배우는 선망의 대상이 아닌, 주변에서 '하지 말라'고 말리는 직종이었어요. 하지만 연기는 내가 하는 가장 소중한 행위라는 믿음과 사명감으로 여기까지 온 거예요. 최불암, 신구, 오현경…나이먹어 지금까지 연기하는 사람들, 그렇게 연기에 평생 몸바친 사람들이에요."

    그는 "지금은 연기자가 권장하는 직업이 됐고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으니 더욱 사명감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시대가 변했다고 원칙까지 변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대사만 안 틀리면 잘했다고 착각하는 연기자, 그 이상 요구하지 않는 감독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연기라는 건 그 이상이야. 우리 능력의 20~30%만 발휘해 졸속제작하는 작품이 적지 않아요. 더 치열해야 해. 그래야 엔터테이너가 아닌 예술가로 당당히 대접받을 수 있어요."

    이순재는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직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정치인들에 대한 걱정도 남달랐다. "정치를 왜 하느냐를 마음에 새겼으면 좋겠어요. 철천지원수끼리의 대결이 아니잖아요. 국민이 잘 사는 나라 만들자는 거 아닙니까."그에게 자신이 연기하고 싶은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했다. "국민들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대통령, 퇴임이 아쉬운 대통령이 나와야 해요. 그런데 아직 안 나왔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