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기는 극사실주의… 작품 속 '그'와 나는 한 몸

김명민(40). 그는 언제나 극중 역할에 100% 동화(同化)되는 배우로 유명하다. 이순신 장군(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외과 의사 장준혁(드라마 '하얀거탑'), 지휘자 강마에(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온몸이 마비되는 루게릭병 환자(영화 '내 사랑 내 곁에') 등 그가 맡은 역할은 사소한 어투·습관에서도 자연인 김명민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19일 개봉하는 영화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에서도 그는 맡은 배역인 마라토너 그 자체로 나온다. 영화 속에서 달리고 또 달리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적당한 보폭과 호흡을 유지했다. 4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난 그는 "무조건 마라토너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촬영 전 석 달 동안 매일 20㎞씩, 많게는 35㎞까지 남산을 뛰어다녔다"고 했다.

극중 인물이 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것은 김명민의 주특기. 2009년 '내 사랑 내 곁에'를 찍을 때는 루게릭병 환자가 되기 위해 105일간 곡기를 끊고 체중을 30㎏ 가까이 줄였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선 '건강 이상설(說)'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실제 마라톤 선수와 똑같은 훈련을 통해 다리 근육을 마라토너처럼 만들었다. 영화 관계자들은 "예전에 다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어서 많이 뛰면 안 좋다고 하던데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한계선까지 달리며 연습했다"고 했다.

촬영하는 장면만 실감 나게 연기해도 될 텐데, 김명민은 왜 굳이 수십㎞를 달리며 스스로를 괴롭힌 것일까. "스스로 괴롭히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되려고 하는 겁니다. 흔히 그런 얘기들 하시잖아요. '쟤는 맨날 하는 연기가 똑같다'는…. 극중 인물에 동화되지 못한 거죠. 배우는 어디선가 실제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을 짧은 러닝타임 안에 보여주는 '대변인'이어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연기 모토(motto·신조)를 "극(極)사실주의" 또는 "리얼리티(reality·현실) 연기"라고 표현했다.

그런 연기론(論) 덕일까. 영화 속 '주만호'의 경기 장면은 실제 마라톤 장면과 흡사했다. 출발하기 전 초시계를 맞추는 긴장감과 달리다가 사점(死點)에 다다랐을 때 가빠지는 호흡, 넘어지면서 일그러지는 표정은 진짜 마라토너의 움직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마라토너처럼 훈련해 실제 마라톤처럼 뛰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진정성을 전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연기를 스스로 평해달라고 했다. 그는 정색하며 "절대 만족 못한다"고 했다. "이제껏 만족한 적도 없지만, 만족하고 안주하기 시작하면 배우로서 패망(敗亡)하는 지름길이죠. 이순재 선생님도 항상 말씀하시듯 '창조를 놓치면 배우는 끝'입니다. 대신 창조에는 희열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