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동전의 앞 뒷면

쇠락한 동토(凍土)에도 봄은 온다. 예멘 태생의 이스라엘 작가 자독 벤-데이비드(Ben-David·62)의 설치 작품 '블랙필드(Blackfield·사진)'는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 결 고운 사막 모래로 지름 10m짜리 원을 만들고, 거기에 높이 15~25㎝의 스테인리스 스틸 들꽃 1만7000송이를 심었다. 빅토리아시대 식물도감의 섬세한 삽화를 참고한 꽃들은 민들레, 엉겅퀴, 제비꽃 등 총 900여 종. 꽃 모양은 철판에 염산을 부어 부식시켜 만들었다. 모든 꽃의 한 면은 온통 검정, 뒷면은 원래 꽃의 색깔 그대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선 관객은 우선 꽃들의 검은색 면과 마주치게 된다. 시들고 말라 비틀어진 꽃의 잔해로 가득한 '죽은 들판'이다. 그러나 원의 둘레를 따라 걷는 동안 뒷면의 총천연색이 보이면서 점차 화려하고 활기찬 '생명의 들판'으로 거듭난다. 동전의 양면처럼 철판으로 만든 꽃의 앞뒷면을 통해 삶과 죽음의 엇갈림을 담아낸 작품에 대해 작가는 "인간의 삶이 곧 이렇다"고 말한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검은 들판에 먼저 우리 인생의 슬픔과 고통을 담았다. 일단 아픔을 맛본 관람객들은 전시장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작품의 변화에서 생의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988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스라엘을 대표해 참가했던 벤-데이비드는 지난해 부산 비엔날레에도 '블랙필드'를 비롯한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전시는 서울 서초동 아트클럽 1563에서 다음 달 10일까지 열린다. (02)584-5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