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랑에 빠진 중년, 왜 이리도 아름답지

현재 방송 드라마에선 이런 중년 로맨스의 '붐'이 일고 있다. 시청률 14% 수준의 SBS 일일드라마 '내 딸 꽃님이'는 대학시절 첫사랑이었던 남녀가 다시 만나 애틋한 감정을 나누는 게 줄거리. 남편과 사별한 뒤 딸을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장순애(조민수)는 의류업체를 운영하며 부유한 중년 남성 구재호(박상원)를 다시 만나고 사랑과 오해 사이에서 갈등한다.

MBC 주말드라마 '애정만만세'는 이혼한 중년 남녀(천호진·배종옥)가 수년 뒤 의사와 환자로 다시 만나 옛 감정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는 내용으로 시청자들 심금을 울리고 있다. 시청률도 20%에 육박하며 선전 중이다. MBC '천번의 입맞춤'은 나이 지긋한 재벌 회장(이순재)과 그를 간병하는 호스피스(차화연)가 순애보적인 사랑을 나누며 부부의 연(緣)까지 맺는 경우. 앞서 종영한 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는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여성(김보연)이 뒤늦게 첫사랑 동네 오빠(이영하)를 만나 절절한 마음을 나누는 내용을 다뤘다.

이런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애정행각에 결코 서두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황신혜·유동근 주연 '애인'을 비롯해 '불꽃' '위기의 남자' '내 남자의 여자' '즐거운 나의 집' 등으로 대표되는 과거 불륜 드라마는 대개 첫 만남과 베드신이 속전속결로 이뤄졌었다. 하지만 현재 방송 중인 중년 로맨스 드라마는 웬만한 청춘 멜로보다도 더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 남자가 여자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쓸쓸히 집에 가거나('내 딸 꽃님이'), 남자가 건달에게 추행당할 뻔한 여자를 구하고 피투성이가 된 채 "평생 충성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첫키스를 나누는 식(KBS '로맨스타운')이다.

중년 로맨스는 왜 이렇게 '착해진' 걸까. 방송가에서는 "예전에는 뜨겁고 자극적인 불륜 드라마가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흥행을 보장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많은 시청자들이 앞뒤 맥락 다 자른 중년의 불륜에는 부담스러움을 느끼고 흥미롭게 보지도 않는다"(이대영 MBC 드라마국장)는 것이다.

가정에 대한 시청자들의 달라진 시선을 반영한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거 중년 로맨스가 불륜 일색이었던 것은 애초부터 가정이 아주 견고한 틀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판타지였지만, 이혼이 흔해진 이제는 가정을 더이상 고정된 틀 자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중년 로맨스도 순수 애정스토리로 변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화평론가 김원씨는 "요즘 시청자들은 이혼·사별 등으로 이미 깨어진 가정에 있는 중년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는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며 "중년은 아무래도 상처가 더 많고 실패를 잘 알기 때문에 관계맺기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지 잘 보여줄 수 있어 드라마 소재로도 적합하다"고 했다.

 

남편과 사별한 50대 시골 아줌마가 사랑에 빠진다. 상대는 중후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를 자랑하는 동년배 서울 남자. 두 사람은 서로의 따스한 매력에 반하지만 관계에 한층 조심스럽다. 서로가 늦은 나이이고, 자녀가 있기에 욕정보다는 애틋함이 두드러진다.

TV조선 주말 드라마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봉실(김해숙)과 데이비드 김(천호진)은 뒤늦게 서로 만나 달콤한 사랑에 빠진다. 제작진은 "앞으로 50대 남녀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를 제대로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중년 로맨스=불륜'이라는 등식이 깨지고 있다. 치정·배신·복수·파멸 등 선정적인 설정으로 점철됐던 드라마 속 '중년 사랑'은 이제 점점 품격있고 애틋한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배우자가 멀쩡히 있으면서 다른 상대와 욕망을 나누는 줄거리 일색에서, 이제는 사별·이혼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정당당한' 늦깎이 사랑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