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동네 의사 송태호의 진료일기] 금연해봐야 별 소용없을때 금연하는 사람들… 평소 약이라도 제때 드세요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동맥경화 같은 성인성 만성질환이 발견되는 나이가 점점 젊어지고 있다. 만성질환은 환자를 설득하기 어려운 병이다. 질환 자체가 증상을 일으키고도 한참 후, 표적 장기에 손상을 입어야 비로소 환자가 증상을 깨닫기 때문이다. 내과의사들끼리 하는 우스개 중에 "당이나 혈압,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면 두통과 몸살, 어지럼증이 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면 만성질환자들이 병원에 열심히 다닐 것이다. 그러나 당이 200mmg/dl, 혈압 140/90mmhg, 콜레스테롤이 220mmg/dl을 넘어도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 환자이면서도 병원에 오지 않거나 와봐야 의사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형외과 의사는 복 받은 사람들이다. 다시 오라고 안 해도 환자가 열심히 병원에 다니니까 말이다.

사회생활로 바쁜 사람들은 만성질환을 치르면서도 내원 약속을 안 지키거나 약 복용도 소홀하기 쉽다. 우리 병원에서 고혈압을 발견하고 약을 복용 중인 한 30대 남자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 보니 점차 내원일을 어기게 됐다. 모든 환자의 내원일을 일일이 체크할 수는 없어, 가끔 병원 밖에서 마주쳐도 모르고 지나갔었다. 이 환자가 최근 병원에 찾아왔다. 자주 머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이 남자에게 "고혈압은 침묵의 살인자"로 시작해 "약 제때 먹는 게 그렇게 힘든가" 등등 싫은 소리를 좀 했다. 의사는 부모가 아니므로 싫은 소리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 젊은 환자를 생각하면 잔소리를 해야 했다.

환자는 앞으로 약을 잘 먹기로 약속했고 고혈압과 관련된 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그는 심장 초음파와 경동맥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청진상 심장 잡음이 없었고 심장 초음파의 결과는 좋았다. 그러나 경동맥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됐다. 한쪽 경동맥의 내부가 좁아졌고 동맥 굵기가 늘어난 소견이 보였다. 뇌로 가는 혈관은 좌우 경동맥과 좌우 척추동맥이 있는데, 경동맥이 뇌로 가는 혈액량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다. 경동맥 초음파로 뇌혈류의 정상 여부를 확인하는 이유다. 동맥의 직경이 4분의 1 좁아지면 뇌혈류는 절반으로 준다. 직경이 절반으로 줄어들면 혈류는 70%가량 줄어들어, 수술을 해야 한다. 줄어든 뇌혈류를 보충하려니 혈관 압력이 높아져 혈압이 올라가고 이 압력이 혈관을 눌러 나타나는 통증이 동맥경화성 두통이다. 환자에게 초음파를 보여주며 설명을 하니 그제서야 병의 심각성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아마 이 환자는 앞으로 약을 열심히 먹고 병원에도 열심히 다닐 것이다.

환자가 의사만큼 많은 의학지식을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증상이 없어도 병을 관리할 수 있다. 약간 겁을 먹은 환자에게 내친김에 금연을 주문했다. 환자는 "내년 검사 결과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금연해봐야 별 소용없을 때가 돼서야 금연을 한다. 그 환자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