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3] 대중가요 스타의 탄생… '조선 성악계 첫손가락' 윤심덕

1923년 6월 16일, 개업 3주년을 맞은 동아부인상회는 YMCA회관에서 음악무도회를 주최했다. 부인상회는 5원 이상 상품 구매자에게 2원, 3원 이상에게 1원짜리 음악회 표를 준다며, "조흔 것 싸게 사시고, 첨 보는 구경하소서"라고 선전했다.

3·1운동 이후 곳곳에서 각종 음악회가 풍년인 가운데, 이 공연이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금년에 동경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도라온 윤심덕(尹心悳)양이 처음으로 출연할 터"였기 때문이다(1923년 6월 26일자).

한기주(韓琦柱)와 함께, 동경 우에노 음악학교를 졸업한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이자 소프라노인 윤심덕은 이미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동경 유학 중이던 1921년 7월, 유학생 순례극단 '동우극(同友劇)'의 일원으로 부산 경성 평양 등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고, 공연마다 그녀의 독창과 홍난파의 사현금(바이올린) 독주가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귀국 첫 공연 후 윤심덕은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사흘 뒤(6월 29일자), 조선여자청년회 주최의 성악회에 출연했고, 이어 평양 숭실학교 음악회(7월 25일자), 목포서 채동선(蔡東鮮)과의 공연(8월 19일자),'바이올링 천재' 계정식(桂貞植)의 독일 유학 고별음악회(10월 27일자) 등에 잇달아 모습을 드러낸 것.

이 같은 음악가의 겹치기 출연에 대해, 팔봉산인(金基鎭)은 '너희의 양심에 고발한다'며, "…연조 높고 유명한 김영환(金永煥)씨를 필두로…윤심덕씨, 홍영후(洪永厚·난파)씨, 새침한 한기주씨…. 그대들이 감격업시 악기를 울니고 안 나오는 목소리를 잡어 짜낼 때, 듯고 잇는 우리들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차듸찬 땀이 구슬가티 엉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개벽 1924년 8월 1일자).

그럼에도 윤심덕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조선 성악계에 첫손가락을 꼽히는 윤심덕!'은, "목소리에 호려서 그가 출연하는 음악회마다 침을 줄줄 흘리고 따라다니는 청년신사들-그 수를 헤일 수 업다"고 할 정도(1924년 12월 16일자).

그런데 그녀의 활동이 뜸해지더니, '악단에서 극단으로! 여배우 된 윤심덕양'은(1926년 2월 6일자), 갑자기 미국 유학을 떠나는 동생(尹聖悳)과 함께 일본에 레코드를 취입하러 갔다(7월 17일자). 그 20여일 뒤 윤심덕은 현해탄을 건너는 관부연락선에서 유학 때 만난 유부남 김우진(金祐鎭)과 함께 정사(情死), 전 조선을 뒤흔들었다(8월 5~10일자).

와중에 윤심덕이 일본에서 취입한 레코드 십수 개 가운데 하나에 '죽엄(死)의 찬미'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8월 6일자), 이 음반은 '조선 노래 레코드를 일본에서 팔기는 처음'인 기록을 세웠다(8월 13일자).

윤심덕이 '세상에 일심정력을 다하야' 취입한 '사의 찬미'는 조선에서 '전례 업는 형세로 세상에 퍼질 것'이 예측됐고(1926년 8월 29일자), 실제로 나중에(1932년 7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조선 사람의 노래'로는 가장 많은 1만3000장이 팔려, 조선 음반시장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주면서 '대중가요 시대'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