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인간다움을 깨우고 싶었다

눈물도 웃음도 없는 영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다음에도 입은 안 떨어지고 마른 가슴으로 침만 삼키게 되는 영화. 벨기에 출신의 장―피에르(61·오른쪽)와 뤽(58) 다르덴 형제는 다큐멘터리를 찍듯 무심하고도 집요하게 대상을 쫓아다니면서도 그에 대한 애정을 끝내 놓치지 않는 '장인(匠人) 감독'들이다. '로제타'(1999)와 '아들'(2005)로 칸 영화제에서 두 차례나 황금종려상을 받은 형제는 지난해 '자전거 탄 소년'으로 다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전작들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졌지만, 나지막하고도 단단한 울림은 그대로다.

영화의 국내 개봉(19일)을 앞두고 이메일로 다르덴 형제를 인터뷰했다. 시나리오 작업도, 연출도 함께 하는 이 둘은 "처음부터 어떤 영화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중에도 항상 함께 결정을 하기 때문에 불화 같은 건 없다.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이 있고, 함께 만난 예술가들과 같이 봤던 영화들, 문학 작품들이 있기에 동일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니고 가졌다"고 했다.

전작인 '더 차일드'나 '아들' '약속'에서처럼 '자전거 탄 소년'에서도 아이가 중요한 소재이자 주인공이다. 11살 시릴(토마 도레)은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생활한다. 아버지는 시릴이 분신처럼 아끼던 자전거를 팔아버리고, 애써 찾아온 그를 매몰차게 외면한다. 다르덴 형제는 "최근 영화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이 주제(아이)를 다룬 영화가 많다"며 "아이에게 사랑을 주거나 다른 이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보다는 소비하고 자신의 몸을 가꾸고 오래오래 사는 데 관심을 두는 개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2002년 일본 도쿄에 갔을 때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 사는 소년이 끝내 돌아오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는 결국 고아원을 나간 뒤 자신의 보호자가 되어준 사람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됐죠. '어떻게 하면 그 소년의 운명이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다르덴 형제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해결책으로 시릴을 사랑해주고, 구제해주는 여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를 내세웠다. 그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주말마다 시릴을 돌봐주지만 시릴은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하며 주위에 반항한다. 시릴 역을 맡은 토마 도레(13)는 이번 영화가 데뷔작이다.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가도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측은한 '문제아' 연기를 실감 나게 소화했다. 다르덴 형제는 도레에 대해 "오디션 과제가 전화를 받지 않는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장면이었는데 토마는 몸과 시선, 수화기를 잡고 있는 손, 팔뚝과 입술까지 모두 극도의 긴장감을 표현해냈다. 아버지가 혹시 전화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그 감정을 우리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고 했다. "어린 배우들과 함께 일하려면 통제보단 자유를 주는 편이 좋습니다. 대신 모든 배우는 촬영 전 40여 일간의 리허설을 거쳤어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훨씬 더 자유로운 상태가 됐고 그들이 갇혀 있는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데도 도움이 됐죠."

자전거 탄 소년은 버림받은 아이에 관한 영화치고는 건조한 편이다. 시릴은 다치고 넘어져도 울지 않는다. 대신 자전거 페달을 밟아나가듯 자신의 인생을 계속 살아간다. 영화의 결말을 긍정적으로 열어놓은 다르덴 형제는 "예술에선 감상(感傷)에 특히 주의를 해야 한다. 감정은 신중하게 표현될 때 더 강렬할 수 있다"고 했다. "누구나 자신의 인간성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가끔은 우리 영화가 어두운 극장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 그의 안에 있는 인간다움을 깨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