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투영한 푸르름' 정병국 개인전

1980년대 초, 서울대 미대 출신 30대 초반의 엘리트 화가가 엉뚱하게도 '영화 간판'의 영향을 받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인물을 커다랗게 부각하고 인물의 표정과 몸짓을 과장되게 그렸다. 대학 때 배운 추상화와는 어긋나는 그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겠다'고 생각했어요. 내 마음을 뒤져보니 어릴 때 나를 매혹했던 영화 간판들이 떠올랐죠. 그 뒤부터 영화감독이 된 심정으로 스크린의 배우를 묘사하듯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고집스레 밀고 간 그 작품들로 그는 1993년 토탈미술상을 받았다.

정병국(64) 개인전 '푸른 고요'가 다음 달 29일까지 서울 서소문동 일우스페이스에서 열린다. 가로·세로 2m가 넘는 대형 화면을 꽉 채운 거대한 인물, 푸른색 배경이 정병국 그림의 특징이다. 한낮의 길가를 흰 등짐 지고 걸어가는 인물을 영화 스틸컷처럼 그린 '정오'(1993) 등 회화 12점이 나왔다.

영남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며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작가가 2008년 이후 4년 만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전시. 작품 배경으로 푸른색을 고수해 온 이유에 대해 작가는 "진공상태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은 작품 속 인물의 영혼을 투영하기에 좋은 빛깔이다. 인물의 상황에 적당한 농도의 푸른색을 만들어내려고 매번 고민한다"고 했다. (02) 753-6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