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10대 '초짜 엄마'들과 함께 산 5년
입력 : 2012.01.10 23:34
서울 천연동 미혼모 그룹홈서 27명의 엄마·아기 함께 생활
가족·사회 냉대에 어깨 처지지만 서로 돕고 의지하며 아기 키워
30대 회사원 부부 임신 감사하며 미혼모 돕는 데 1000만원 내놓기도
집에 식구가 하나 더 늘었다. 며칠 전 출산한 열여덟살 미애(가명)씨가 예쁜 아기와 함께 퇴원해 돌아왔다. "혼자 아기 키우면 후회하지 않겠어?" "아니요, 너무 행복해요." 다시 물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후회하지 않고 키울 자신이 있어?" 가끔 혼자 아기를 키우다가 힘들어 후회하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네!" 하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미애씨에게 "그래, 예쁘게 잘 키워야 해!" 하고 다짐을 받았다. 아기가 처음 집에 들어오면, 엄마들은 먼저 아기를 보겠다며 데이지 방으로 몰려온다. 데이지 방은 아기를 키우면서 몸조리하는 방이다. 몸무게 2.7㎏의 작은 아기가 눈도 못 뜬 채 고갯짓을 하자 엄마들이 환성을 지른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는 우리 집엔 스물일곱 명 대식구가 산다. 임신한 미혼모 열두 명,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엄마 일곱과 아기 일곱, 그리고 아기를 입양 보내고 공부하는 미혼모 1명이다. 나는 5년 전부터 구세군 미혼모 보호시설인 두리홈의 운영 책임을 맡아 열여섯살부터 서른두살까지인 미혼모 엄마, 아기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먼저 아기를 낳은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아기 젖 먹이기, 기저귀 갈기, 트림시키기, 목욕 등 육아 방법을 알려주고, 도움도 받으면서 생활한다. 처음에는 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초보 엄마들도 며칠 지나면 척척 알아차리고 손놀림도 빠르게 움직인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초보 엄마들이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2층 방에서 자다 깬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를 알아차리고, 단숨에 아기에게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인데도 아기 엄마는 잘도 듣고 움직인다. 영락없는 엄마다.
한 아기 엄마에게 너무 착하다고 칭찬했다. "전에는 하나도 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기를 낳고 보니, 아기가 엄마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울까 봐 자꾸만 착하게 살게 돼요."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방황하면서 비뚤어진 문제청소년이 됐다는 아기 엄마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꽉 찬 엄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아기를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또래 친구들은 아직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떨고 있을 나이인데….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는 우리 집엔 스물일곱 명 대식구가 산다. 임신한 미혼모 열두 명, 아기를 낳아 키우고 있는 엄마 일곱과 아기 일곱, 그리고 아기를 입양 보내고 공부하는 미혼모 1명이다. 나는 5년 전부터 구세군 미혼모 보호시설인 두리홈의 운영 책임을 맡아 열여섯살부터 서른두살까지인 미혼모 엄마, 아기들과 함께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먼저 아기를 낳은 엄마가 '후배 엄마'에게 아기 젖 먹이기, 기저귀 갈기, 트림시키기, 목욕 등 육아 방법을 알려주고, 도움도 받으면서 생활한다. 처음에는 아기가 왜 우는지 몰라 안절부절못하던 초보 엄마들도 며칠 지나면 척척 알아차리고 손놀림도 빠르게 움직인다. 참 신기한 것은 이 초보 엄마들이 지하식당에서 밥을 먹다가도 2층 방에서 자다 깬 자기 아기의 울음소리를 알아차리고, 단숨에 아기에게 달려간다는 사실이다. 내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인데도 아기 엄마는 잘도 듣고 움직인다. 영락없는 엄마다.
한 아기 엄마에게 너무 착하다고 칭찬했다. "전에는 하나도 착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기를 낳고 보니, 아기가 엄마가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울까 봐 자꾸만 착하게 살게 돼요."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방황하면서 비뚤어진 문제청소년이 됐다는 아기 엄마의 이 말을 듣는 순간,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꽉 찬 엄마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아기를 잘 키우겠다는 의지가 고맙기도 했고 한편으로 마음이 아팠다. 또래 친구들은 아직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영화 보고 맛있는 것 먹으며 수다 떨고 있을 나이인데….
스물한살 수빈이 엄마는 4년 전에 두리홈에 들어와 아기를 낳았다. 혼자 아기를 제대로 키우려면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 고등학교를 마치려고 서른 곳 넘게 학교에 직접 전화하고 찾아갔지만, 어렵게 들어간 학교에서 이틀 만에 쫓겨나왔다. 미혼모는 '문제아'이고 혹시 다른 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전염병 환자라도 본 듯 외면한다.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따낸 수빈이 엄마는 대학에 들어가 전자상거래를 공부하기 위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후원자가 나서서 그분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면서 월급을 저축해 대학에 진학할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이 꼭 이루어지길, 나는 기도한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사용한 손때 묻은 수첩에는 적어놓은 지 오래된 기도제목이 있다. "여성들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한(恨)을 풀어주고 덜어주는 자 되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기도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1989년 여성상담소에 몸담은 이래, 1994년 구세군 사관이 된 뒤 성매매시설, 가정폭력쉼터를 거쳐 이곳 두리홈까지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일에 20여년을 바쳐왔다.
두리홈을 맡기 전엔 나도 미혼모들을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분별없이 책임지지 못할 사랑을 할까. 아이는 낳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들과 한집에서 살면서 내가 너무 오만하고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미혼모들은 철부지처럼 보이는 10대 소녀라도 '엄마'였다.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주변의 냉대를 무릅쓰면서도 자신을 내던지며 아기에게 사랑을 주려했다.
한 미혼모는 두리홈을 돕는 봉사자의 가정을 찾았다가 3대가 함께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부러운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채, 가정과 학교·사회에서 소외된 미혼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 전 두리홈 식구들과 함께 수기집 '너도 꽃, 이제 피는 거야'를 낸 것도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두리홈에 30대 부부가 찾아왔다. 얼마 전 임신한 이 부부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생명의 축복이 너무 감사해서 그 감사를 미혼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기업과 대학연구원으로 있다는 이 평범한 부부는 며칠 후 1000만원을 보내왔다. 새로 태어날 생명에 대한 감사가 또 다른 생명을 돕는 손길로 이어진 것이다. 세상은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사하며 돕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내가 어릴 때부터 사용한 손때 묻은 수첩에는 적어놓은 지 오래된 기도제목이 있다. "여성들의 가슴 속에 묻혀 있는 한(恨)을 풀어주고 덜어주는 자 되게 하소서"라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기도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나는 1989년 여성상담소에 몸담은 이래, 1994년 구세군 사관이 된 뒤 성매매시설, 가정폭력쉼터를 거쳐 이곳 두리홈까지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을 위한 일에 20여년을 바쳐왔다.
두리홈을 맡기 전엔 나도 미혼모들을 흔쾌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왜 분별없이 책임지지 못할 사랑을 할까. 아이는 낳아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하지만 이들과 한집에서 살면서 내가 너무 오만하고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미혼모들은 철부지처럼 보이는 10대 소녀라도 '엄마'였다.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주변의 냉대를 무릅쓰면서도 자신을 내던지며 아기에게 사랑을 주려했다.
한 미혼모는 두리홈을 돕는 봉사자의 가정을 찾았다가 3대가 함께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처음 봤다고 부러운 듯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채, 가정과 학교·사회에서 소외된 미혼모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얼마 전 두리홈 식구들과 함께 수기집 '너도 꽃, 이제 피는 거야'를 낸 것도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이들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두리홈에 30대 부부가 찾아왔다. 얼마 전 임신한 이 부부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생명의 축복이 너무 감사해서 그 감사를 미혼모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했다. 기업과 대학연구원으로 있다는 이 평범한 부부는 며칠 후 1000만원을 보내왔다. 새로 태어날 생명에 대한 감사가 또 다른 생명을 돕는 손길로 이어진 것이다. 세상은 남을 탓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감사하며 돕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