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마나한 조회공시… 투자자들도 덤덤

코스닥 상장업체인 K사(社)는 지난해 7월 주가급락 사유를 묻는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자금 조달 계획을 검토 중이나 확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기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최대주주가 바뀌는 주식·경영권 양수도계약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고 말을 뒤집었다. 사실은 회사 내부에서 중요한 주가 급락 요인이 있었던 셈이다.

한국거래소의 심사 결과 이 회사는 조회공시 답변 당시 법무법인 방문 등을 통해 회사 경영권이 제대로 옮겨가지 못할 것을 알게 됐으나, 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요구에 성실히 응하지 않거나 아예 제대로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거래소의 조회공시는 투자자들이 궁금해할 중요한 사항을 거래소가 대신 물어봐 주는 제도인데, 일부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조회공시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거래소가 아무리 조회공시를 요구한다고 해도 막상 기업이 부정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주가 급등 이유?…"회사도 몰라요"

올 들어 지난 9일까지 한국거래소로부터 주가가 급등한 이유를 묻는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기업 중 답변이 완료된 기업은 유가증권 상장사 2곳과 코스닥 상장사 15곳. 이 중에서 주가급등과 관련해 한 가지라도 사유를 제시한 기업은 유가증권 상장사 2곳과 코스닥 상장사 2곳에 불과했다.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에는 주가급등 조회공시를 요구받은 기업의 86.7%에 해당하는 13곳이 주가가 급등할 만한 사유가 없다고 공시했다. 10개 기업 중에서 9개 기업이 자신들의 주가가 왜 오르는지를 모르겠다고 발표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회공시 답변이 공개됐다고 해도 주가는 조회공시가 나오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올 들어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아이넷스쿨과 이루온, 오늘과내일, 코원시스템은 주가급등 사유가 없다고 밝히고서도 상한가를 기록했다. 나우콤, 코리아나화장품, 케이아이엔엑스도 강세를 기록 중이다.

국내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한 애널리스트는 "주가가 크게 등락하는 상황에서 회사가 마땅히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 없다는 얘기는 바꿔 말하면 투기꾼들이 몰려 있다는 뜻"이라며 "조회공시가 투자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회답변 때 거짓 정보 흘리기도

오히려 조회 답변을 할 때 거짓말 정보를 흘리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7월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A사(社)는 주가급등과 관련한 조회공시 요구에 "중요정보가 없다"고 답하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정관변경, 이사선·해임 등을 위한 임시주총을 위한 이사회 결의를 발표했다.

지난해 시장에서 퇴출당했던 케이에스알과 네스테크 역시 조회공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위와 같은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일단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3월부터 조회공시 사후심사 제도를 마련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에는 총 17건의 코스닥 조회공시를 사후심사한 결과 이 중 6개사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국내 증권업계 관계자는 "조회공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당한다고 해도 기업 입장에서는 벌점이 부과될 뿐 당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는 않는다"면서 "공시번복이나 공시불이행이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한 조회공시가 투자자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