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공감편지] "필리핀 새댁에게 한국은 차디찼구나… 안아주고 싶다, 친정엄마처럼"

"13세 많았던 한국 남편은 술만 마시면 때려 이혼…
공장선 월급도 안 주고 해고, 헤어진 아들·딸 너무 그리워"

필리핀 여성 마리(Mari·31·가명)씨는 22세 때 전북 부안으로 시집 왔다. 남편은 그보다 13세 많았다. 꿈에 부풀었던 한국에서의 결혼 생활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남편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그녀를 때렸다. 폭행을 견디다 못한 마리씨는 2008년 이혼한 뒤 지금은 인천에서 혼자 살고 있다. 월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부당 해고를 당하는 일도 여러 번 겪었다. 마리씨는 전 남편과 살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딸과 한 살 어린 아들을 잊을 수가 없다. "이혼한 뒤로 한 번도 못 봤습니다. 돈을 벌어 딸·아들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어요."

낯선 나라, 낯선 남편… 혼자 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겠지
널 그리 아프게한 사람들… 부끄럽고, 눈물나고, 미안하다
지금은 한겨울이지만 봄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것
얼음장 같은 편견도 머잖아 눈녹듯 사라질테니… 힘내자 마리야, 또다른 딸들아

나의 딸 같은 마리에게

마리야! 지난밤 꿈속에선 너의 고향 필리핀에 있었겠지. 야자수 잎으로 지붕을 덮은 고향 집 마당엔 흰 염소와 볏이 붉은 닭과 햇볕에 그을린 어린 동생들이 맨발로 뛰놀고 있었겠지. 너는 그 꿈속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애절하게 울었겠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한국이라는 나라,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에게 시집와 아들딸 낳고 열심히 살고자 했겠지만, 술에 취한 남편의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하다 못해 이혼하였다니, 이 추운 겨울날 혼자 공장을 전전하며 삶을 지탱하고 있다니, 시집에 두고 온 어린아이들은 또 얼마나 보고 싶겠니. 친정이라도 가깝다면 하소연이라도 할 곳이 있겠지만, 고향 집은 머나먼 필리핀 어느 작은 섬일지도 모르겠구나. 낯선 나라에 와 혼자 어느 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밤새도록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겠지. 그 상상을 하니 나도 딸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가슴에 멍이 드는 듯 아프구나. 마리야! 흰 눈이 내리는 시골 시장터 따뜻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국밥집에서 만나고 싶구나. 만나서 친정 엄마처럼 안아주고 싶구나.

먼 나라에서 시집온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든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것이지만 평소, 그렇게까지는 험하지 않던 사람들도 외국여성들과 결혼하면서부터 더욱 사나워지는 걸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그중에 한 가지는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 때문에 생기는 오해일 수도 있고, 또 한 가지는 그렇게 생긴 충돌을 이해하고 풀어나갈 수 있는 언어 소통의 어려움이 뒤따르는 것 같더구나.

특히,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해본 경우가 드문 시골 가정집이라면, 외국 신부의 생소한 문화와 풍습을 이해하고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이웃사람들까지 있다면 이 결혼은 불을 보는 듯 뻔한 일.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는,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옳지 않다거나 틀렸다는 편견을 버려야 하는 광범위한 국민적 인식이 필요하겠지. 이 문제는 현재 민관이 협심하여 점진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니 머지않아 정착하기에 더 좋은 여건이 될 것으로 믿는다.

누가 뭐라고 수군거려도, 낯선 나라에 남편 한 사람만 믿고 시집온 아내를 이해하고 보듬어 주며,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것들은 가르쳐 주면서 살아야지 폭력을 휘두르다니, 몸집도 작고 힘도 없지만 내가, 폭력을 휘두른 남편과 모진 일을 시키고 월급도 제대로 주지 않고 해고한 공장주를 만나 팔을 걷어붙이고 한 판 따져보고 싶구나. 이후에도 몇 번이나 그런 행태가 반복되었다니,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정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구나. 마리야!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 대신 사과할게.

마리야! 너의 고향 필리핀처럼 맑고 푸른 바다가 있는 강릉 재래시장에 가면, 커다란 돈주머니가 달린 앞치마를 입고 "사과 두 개 천원! 어머니! 어머니! 사과 사세요!" 하면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고 명랑한 목소리로 장사하는 베트남에서 시집온 새댁이 있단다. 그 옆에는 돌이 갓 지나 보이는 아기를 업은 시어머니도 싱글벙글 장사하고, 남편은 소형트럭에 무거운 과일 상자를 오르내리고, 그런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이더라.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원어민 선생님도 결혼이주여성인데 아들딸 3남매 낳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잘살고 있단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겠지만, 차츰 자리가 잡히면 자신이 갖춘 능력과 기술을 발휘하여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는 나라란다. 마리야! 그리고 마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 다른 딸들아! 지금은 얼음이 깡깡 언 한겨울이지만, 머지않아 봄은 반드시 올 것이고 이 차가운 문화의 오해와 인종차별의 편견이 두꺼운 얼음처럼 녹아서 흔적 없이 사라지겠지. 그러니, 자 힘내자! 지금은 서로 포용하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한겨울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