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보단 자신감·열정" 女子 엄정화는 행복하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마자 엄정화(43)는 금·은색의 금속 액세서리가 달린 번쩍이는 재킷을 벗고선 털실로 짠 카디건을 걸쳤다. 도도하게 치켜뜨던 눈도 한풀 가라앉으며 부드러워졌다.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가진 '무대의 여왕'에서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고민을 들어줄 것만 같은 '옆집 언니'로 변신하는 덴 몇초 걸리지 않았다. "여자들에게 더 인기 많은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슬프죠. 옛날엔 남자들이 더 좋아했는데"라며 웃었다.

10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정화를 만났다. 이석훈 감독의 '댄싱 퀸'에서 대학 시절 '신촌 마돈나'로 불렸을 만큼 가무(歌舞)에 능했던 가정주부 '엄정화'로 나온다.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동창 '황정민'(황정민)과 결혼하면서 돈을 잘 못 버는 남편 때문에 에어로빅 강사를 하는 억척 주부다. 우연히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룰 기회를 만나 그룹 '댄싱 퀸즈'로 데뷔한다. "영화 속 엄정화처럼 기회를 잡지 못한 채 결혼했다면 살아가면서 계속 아쉬워했을 거예요. 가슴 속에 뻐근하게 뭔가 남아 있는, 그런 느낌을 간직한 채로."

'댄싱 퀸'인 엄정화가 '댄싱 퀸'이란 영화에 출연해 노래 부르고 춤추는 배역을 맡는 건 배우로서 쉬운 선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는 "가수활동을 오랫동안 해서 그 이미지가 너무 강하지 않을까, 너무 '엄정화'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했다. "막상 연기해보니 앞서간 걱정이었어요. 주부로 살다가 가수로 데뷔한 (영화 속)엄정화와 가수이자 배우로 살아온 엄정화는 완전 다른 인간인걸요. 영화 속 데뷔 무대는 말 그대로 연기니까요."

엄정화는 1993년 가수이자 배우로 데뷔했다. 20년째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그는 아직도 무대에서 아이돌 가수들과 춤추며 노래를 부르고, 스크린에선 여주인공 역할을 놓친 적이 없다. 엄정화는 "롤모델이 없어 내가 롤모델이 돼버리자고 생각했다. 인터뷰에서 '엄정화를 닮고 싶다'는 후배도 있으니 어느 정도 성공한 것 같다"고 했다. "나이 때문에 주눅들고 있을 시간에 더 멋져지는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고도 했다. " '나이가 많으니까'라며 주춤하다가도 '어머,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라며 정신을 차려요. 그래서 '항상 멋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죠. 멋지다는 건 자신감과 열정이에요. 그게 없으면 눈치 보며 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