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비친 '신문화의 탄생'] [4] "이십세긔의 문명은 라듸오 문명"… 청소년 유해론도

"라듸오 문명으로 인하야 세계는 갱생하였다. 과거에 있어서 문명이라 참칭하든 모든 것이 이제는 라듸오 압헤서 오직 그 잔해를 남길뿐이다! 아아, 세계의 인류는 깃버하라! 라듸오! 라듸오! 라듸오! "(조선일보 1925년 7월 29일자)

경성방송의 첫 라디오 정규방송(1927년 2월 16일) 이전부터, 시험방송·외국 방송 등을 통해 '신세계'를 접한 사람들은 흥분에 휩싸여 '라디오 예찬'을 일찌감치 토해냈다. 서울 한복판에 우마차가 다니던 시절 등장한 이 전파 미디어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십세긔의 문명은 라듸오 문명'이라고 불렸다.(1927년 1월 8일자) 라디오의 보도·광고 기능에 충격받은 어느 일본 지식인은 "오는 시대는 라듸오 문명의 독점 무대인 동시에 신문지 몰락의 시대"라고 성급한 예언을 하기도 했다.(1925년 7년 29일자)

갓 태어난 방송의 걸음마는 처음엔 순탄치 않았다. "경성방송은 내부의 권력 다툼이 끈힐 사히가 업다"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매일의 푸로그람이… 긴장미를 일허 필경 탈퇴자를 속출케"하는 '추태 백출의 방송국'이라고 신문은 매섭게 질타했다.(1927년 5월 11일자) 초기 방송국 내부가 얼마나 어수선했는지 1927년 2월 25일 저녁 경성방송국에서 조선 무당을 불러다가 굿판을 벌이고 넋두리를 시킨 사실이 신문 가십난을 차지했다.(1927년 2월 27일자)

처음엔 소리가 공중을 타고 날아와 들린다는 것 자체에 넋을 잃었던 청취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값 만이 내고 들을 것은 없다'고 불만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초반엔 청취자가 2000명을 넘을까 말까 했다.(1927년 5월 13일자) 1927년 라디오 편성표를 보면, 음악 연주·만담·강연·소설 낭독 등이 이어졌고 뉴스는 하루 2차례뿐이었다. 그것도 공지 사항을 낭독하는 수준이었다.

전통 음악을 이수한 기생들 출연도 잦았는데, 질이 떨어지는 일도 있었던 듯하다. 수준 낮은 방송에 대해 신문은 "강연사(講演師)도 말마디나 하는 양반을 초빙하고, 기생도 소리마디나 할 줄 아는 것을 초빙하여야지… 너저분한 기생들의 꿈꾸는 소리라든지 십팔세기 소학교 수신교과서 가튼 것은 제발 고만두시오"라고 신랄하게 혹평을 쏟아냈다.(1927년 7월 27일자)

1930년대 라디오는 방송극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한다. 그러자 이번엔 방송이 아이들 교육을 해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1934년 1월 1일자 신년 특집에 실린 '라듸오와 레코드/아동을 표준하라'는 기사는 방송 역사의 초창기부터 '청소년 유해론'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기사에서 '유치원 당국자'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라디오가 좋지 않은 내용을) 조금도 붓그러워 하지않고 태연히 지절대는 꼴을 보면 참 딱해요. 어린 아이 가정에서 거기에 대하여서는 각별히 조심할 필요가 있서요. (아이들은) 그 구역질 나는 넌센스 가튼 것을 하는데에도 다 줄줄 외여서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