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다른 나] 사진전 여섯 번 개최한 치과 의사 이득영(48)씨

"한강 다리 25개 항공촬영에 서울 강남 사거리 사진전까지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받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카메라 잡아 핏속의 '끼' 맘껏 발산하는

사진 덕분에 난 자유인"


"이득영은 아마추어 사진가다. 본업은 치과 의사다."

미술 평론가 임근준씨는 제 전시회 도록에 쓴 글에서 저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아마추어'라고 해서 제 작업이 설익은 취미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전업(專業) 사진가가 아니라는 뜻일 뿐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랍니다.

저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섯 번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첫 개인전은 한강 시민공원의 간이 매점 69개를 촬영해 열었어요. 자전거를 타고 서울 구의동 집에서 출발해 강서까지 한강변을 달리노라면, 꼴이 비슷한 간이 매점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발면, 연, 튜브 공…. 간편한 먹을거리와 장난감을 파는 그 매점들이 이 시대의 인스턴트 문화를 대변한다고 생각했어요. 2005년 겨울 한 철을 꼬박 매점 사진을 찍으면서 보냈습니다. 마침내 전시회를 열었을 때, 전 굉장히 흥분했지만 주변은 조용했어요. 첫 전시회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하지만 '신기하다'는 반응은 꽤 있었습니다.

2007년 12월엔 한강 다리 25개를 항공촬영했어요. 1400m 상공의 헬리콥터 몸체 아랫부분에 카메라를 달아 리모컨으로 조종하며 찍었지요. 헬리콥터를 네 번 띄웠는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날씨 살피랴, 수방사와 국방부의 허가받으랴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그 작업을 선보인 2008년 개인전이 제가 '사진작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습니다. 시각이 신선하고 독특하다는 평을 받았지요. 제 작업을 좋게 본 사진 평론가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자고 제의했고, 몇몇 사진가와도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다음엔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항공촬영했고, 배를 타고 한강을 훑으면서 강 양쪽 기슭을 찍은 사진 1만3000장을 포토샵으로 합성해 한 장으로 만드는 작업도 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사거리만 찍은 사진들을 내놓은 지난해 봄 개인전은 상업 갤러리인 서울 청담동 갤러리2에서 가졌습니다. 작품성과 함께 시장성도 인정받은 셈이지요. 사진은 많이 팔렸냐고요? 글쎄요, 저는 만족합니다. 그전까지 판매를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제가 운영하는 치과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있습니다. 30여평 규모로, 간호사 두세 명과 함께 일하는 자그마한 치과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치과 의사를 꿈꿨던 건 아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83년에 서울 모 대학 공대에 입학했어요. "취직이 잘 된다"며 부모님께서 권유하셨거든요. 대학 입학 이듬해 군에 입대했는데, 군 생활 내내 진로에 대해 고민했어요. 난생처음 계급사회를 겪으면서 '내가 과연 조직 생활을 버텨낼 수 있을까' 하는 갈등이 일었지요. 1987년에 제대한 뒤 재수 학원에 등록했고, 1989년 단국대 치대에 입학했어요. 주변의 치과 의사들이 자기 일을 하면서도 다른 취미를 자유롭게 즐기는 모습에 끌렸거든요.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입니다. 집 안에 보석처럼 감춰져 있던 아버지의 코니카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부터였지요. 처음엔 주변 사람들을 찍다가, 사진 잡지들을 보며 흉내를 내기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 매혹적이었어요. '어떤 사진은 내 의도와는 달리 내 마음을 끄는 면이 있는데 그건 뭘까'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뭘까'…. 뭐, 그런 생각들을 하기 시작했어요. 자연물을 찍는 사진을 넘어서서 '아트(art)'의 경지에 이른 사진을 찍고 싶다는 고민은 대학교 때 사진 동호회를 하면서 이미 끝냈습니다.

1997년 개업하고는 병원을 궤도에 올려놓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환자들의 구강과 아들 커가는 모습 이외에는 사진을 찍지 못했지요. 그런데 2000년대 초, 테니스 잡지의 객원 사진기자로 일하기 시작한 게 다시 카메라를 잡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진작가로 이름이 나자 사람들이 묻곤 합니다. "치과 의사의 자아(自我)와 사진가의 자아가 충돌하지 않느냐"고요. 그렇지 않아요.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할 때는 철두철미하게 객관적인 프로토콜에 따라 최상의 진료를 하지요. 그러다 사진을 찍을 때는 제 자아가 마음껏 발현됩니다. 진료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최상의 것'을 추구하지만, 그 결과물은 엄격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유롭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사진을 찍게 된 것은 핏속에 흐르는 어떤 기질 때문인 것 같아요. 내 안의 '끼'를 발휘하지 못해 때때로 미칠 것 같은 순간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그런 순간들이 사라졌어요. 지금 제 인생엔 병원과 사진과 가족밖에 없습니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골프도 안 칩니다. 가족은 뭐라고 하냐고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은 아빠를 재밌어하고요. 아내는 이해해주면서도 때론 힘들어합니다만, 원래 이런 거 하는 사람은 다 주변을 괴롭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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