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부르고 봉사하며 시름 다 날려요"

"세상사 고달픔 속에 시달릴지라도 참고 사는 게 인생인 것을~ 탈도 많고 말 많아도 이해하며 사는거야~ 둥굴둥굴 웃으며 사는거야."

10일 저녁 대전시 동구 삼성동 21평 임대아파트.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대전공고 최성일(63) 교사가 혼자 기타 반주에 맞춰 구성진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연습에 열중한다. 2년 전 음반을 내고 데뷔한 늦깎이 가수이기도 하다. 최 교사는 1978년 충남기계공고 교사를 시작으로 대전·충남에서 35년째 교단에 서고 있다.

최 교사는 장애를 가진 아들과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노모를 부인 홀로 돌보느라 마음 편할 틈이 없다.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도 3년 전부터 짬을 내 대전의 요양원, 복지시설 등을 찾아 노래봉사를 꾸준히 펼치고 있다. 보통 한 달에 3~4번씩 소외된 이들과 노래를 통해 정을 나눈다.

최 교사의 아들(31)은 정신지체 2급 등 복합장애를 갖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모(80)는 8년째 병져 누워 거동조차 못한다. 어려운 집안사정에 불화가 잦았고 결국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도 겪었다.

"힘든 처지지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진 않아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죠."

최 교사가 뒤늦게 노래 봉사에 헌신적으로 매달리는 이유는 어릴 적 못다 이룬 가수의 꿈이 한 원인이 됐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어릴적 동네 노인들 앞에서 유행가를 많이 불렀고, 학창시절 소풍을 가면 대표로 꼭 노래를 불렀다. 고교 3학년 때 한 방송국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대학생 시절 유명 가수가 된 이광조 등과 동아리활동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의 강한 반대에 밀려 가수 꿈을 접고 교직에 발을 들이게 됐다. "선친이 면장이셨는데 딴따라를 해서 되겠느냐"며 가족들이 완강히 반대한 탓이다.

이후 30년 넘게 교사로 일하며 아들 간병까지 맡는 등 무거운 짐을 안아온 그가 뒤늦게 찾은 돌파구는 노래였다. 퇴직이 가까워지면서 의미있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한 끝에 잘 할 수 있는 게 노래라는 확신이 생겼다. 2009년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과 봉사단을 꾸려 노래봉사에 나섰다. 2010년엔 환갑을 맞아 음반을 내는 등 그동안 눌러왔던 끼를 발산하고 있다.

"주변 권유도 있었지만 못다 이룬 꿈을 펼치겠다는 각오로 회갑 때 직접 작사한 곡 등으로 음반을 내게 됐죠."

그의 음반에는 직접 작사한 '둥글둥글', '당신이 머물고 간 자리' 등 2곡과 기성 가수의 노래를 합해 모두 13곡이 담겼다. 직접 작사할 수 있던 것은 고교 2학년 때부터 일기를 계속 쓰고 틈틈이 시를 써온 덕분이다. 손수 작사한 곡에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슬퍼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의지를 담았다.

"무대에선 웃지만 가슴 속엔 눈물이 흐르죠. 노래가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불행한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의 애창곡은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랫말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모르게 겪은 마음 고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아들의 치료비와 생활비 부담은 교사 월급만으로 감당하기 버거워 1995년부터 작은 고물상 일까지 시작했다. 학교수업에 지장받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일하고 있다. 열심히 벌어야 봉사활동에 드는 비용도 떳떳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늦게 시작했지만 음악을 통해 봉사할 수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그는 요즘 퇴임 이후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노모를 잘 모신 뒤 아들과 함께 그늘진 곳을 찾아 노래봉사를 펼치겠다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는 아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희망을 심어주고 싶어서다. 이를 위해 요즘 몸이 불편한 아들에게 기타와 키보드 연주를 가르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외로운 노인과 장애우들이 부담없이 찾아와 공연을 즐기는 아담한 공간을 만드는 게 꿈이죠."

최 교사는 "노래를 통해 소외된 이들과 희망과 정을 나누는 데 여생을 바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