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와 함께 조선 말 역사여행

지난해 하반기 인천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대불호텔'의 터 발굴이 관심거리였다.

상가 건물을 지으려고 터파기 작업을 하다가 지하실과 계단 등이 발견된 것이다. 한동안 이것이 정말 대불호텔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있었지만 문화재청이 최종적으로 그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 그 터에는 후속 조치를 위한 '원형 보존 결정'이 내려져 있다.

이 호텔은 1885년 인천에 들어온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가 묵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당시 "일본인이 경영하는 인천의 다이부쓰(大佛)호텔에 묵었는데 종업원들이 영어를 잘했고, 서양식 음식도 맛있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인천은 개항기 이후 우리나라에 외국의 근대문물이 들어온 관문이었다. 그래서 이 호텔처럼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진 유적이 적지 않다. 새해의 첫머리, '최초'를 찾는 여행을 인천으로 떠나보자. 이들 대부분은 인천의 옛 도심인 중구 일대에 몰려 있고, 경인전철 종점인 인천역에서도 가까워 다니기가 어렵지 않다. 이 도보여행에서 들러야 할 '최초의 것'들을 소개한다.

◇최초의 서구식 공원 자유공원

인천역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패루(牌樓)가 보인다.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공식 '중국인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다. 이 문을 지나 언덕길을 올라가면 자유공원으로 이어진다. 이 공원은 1888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으로 모여든 서양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던 만국지계(萬國地界) 안에 만든 것이라 만국공원이라 불리다 1957년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공원 가운데 서 있는 맥아더 장군 동상 자리에는 원래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독일 무역회사 '세창양행'의 사택(직원용 건물)이 있었다. 1884년 지은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함포사격으로 사라졌다. 이 공원에서 중구청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개항기에 중국인과 일본인들이 살던 지역을 가르던 조계지(租界地) 경계 계단이 있는데, 그 앞에 대불호텔 터가 있다.

◇최초의 기상대 인천관측소

자유공원에서 제물포고등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인천기상대가 나온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상대인 인천기상대는 1904년 지금 중구청 뒷길에 인천관측소로 생겼는데, 이듬해 응봉산 꼭대기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인천기상대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와도 기상 정보를 주고받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시계가 흔하지 않던 당시에는 이 기상대에서 낮 12시가 되면 대포를 한 방씩 쏘아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곤 했다. 이 대포는 러일전쟁이 끝난 뒤 못 쓰게 된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인데, 실제 포탄을 쏜 것이 아니라 화약을 터뜨려 소리만 요란하게 냈던 것이다.

◇최초의 극장 '애관'

동인천역에서 멀지 않은 경동에 애관극장이 있다. 이 극장의 출발은 1895년에 생긴 공연장 '협률사(協律舍)'이다. 부산 출신 엿장수였다는 정치국(丁致國)이라는 사람이 큰돈을 번 뒤 만든 창고식 건물이다. 이는 1902년 조선 왕실이 서울 정동에 세운 공연장 '협률사(協律社)'나 1908년 이인직이 세운 '원각사'보다 앞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연장(극장)이다.

이곳에서는 인형극, 신파극, 창극, 남사당패 공연 등이 열렸다. 이곳은 그 뒤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다시 애관극장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 협률사의 원래 위치는 지금보다 좀 더 위쪽이었으나 6·25 때 불이 나 없어지는 바람에 지금 자리에 새로 건물을 지은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최초들'

자유공원 아래 중국인 마을에 가면 '국민음식'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옛 중국음식점 '공화춘(共和春)' 건물이 남아 있다. 중국 짜장면과 다른 한국의 짜장면은 1905년 이곳에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청요리(중국요리) 전문점 '산동회관'의 주인인 화교 우희광(于希光)씨가 춘장에 국수를 넣어 먹는 중국식 짜장면으로 처음 선보인 것이라 전해 온다. 우씨는 그 뒤 1912년 중화민국의 공화국 출범을 기념해 가게 이름을 '공화춘'이라 바꿨으며, 6·25전쟁 직후 이곳에서 지금처럼 양파·고기·전분 등을 넣고 볶는 한국식 짜장면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 공화춘은 1984년에 문을 닫았지만 현재 짜장면박물관으로 다시 꾸미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移民)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항에서 미국 상선 '게릭호'를 타고 하와이로 떠난 102명이었다. 인하대학교도 하와이 이민자들이 보내온 성금을 바탕으로 만든 학교여서 학교 이름이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합쳐 인하대가 됐다. 이 같은 이민의 역사는 월미도에 있는 이민사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 떨어진 팔미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서 있다. 1903년 6월 1일 처음 불을 밝힌 이 등대는 높이 7.9m, 지름 2m 규모다. 2003년 그 옆에 새로 만든 등대에 임무를 넘겨주고 100년 만에 퇴역했으며, 지금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